팻 "비그" 맥게온(Pat "Beag" McGeown, 1956년 9월 3일 ~ 1996년 10월 1일)[1]은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 요원이며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에 참여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으로 1970년 IRA의 청년조직인 피아나 에이렌에 가입했다.[2][3] 처음 체포당한 것은 14살 때이며, 1973년 구류당하여 1974년까지 롱케시에서 옥살이를 했다.[1][3][4] 1975년 11월 폭발물 소지 및 유로파 호텔 폭파 혐의로 체포되었다.[3] 1976년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IRA 조직원이라는 이유로 5년, 폭발물 소지와 호텔 폭파가 각각 15년 하여 35년형을 선고받고 롱케시에 특수범주지위로 수감되었다.[3][4]
1978년 3월 맥게온은 브렌던 맥파를레인, 래리 마를레이와 함께 탈옥을 기도했다. 철사 절단기와 교도관 제복, 나무를 깎아 만든 가짜 총을 준비했으나,[5] 탈옥은 실패했고 맥게온은 6개월형이 추가되고 특수범주지위를 잃었다.[1][3]
맥게온은 교도소 H동으로 이감되었고 거기서 모포투쟁 및 불결투쟁에 참여한다.[1][3] 1980년 말에는 일곱 명의 수감자들이 53일간의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제1차 단식투쟁은 사망자 없이 끝났고, 1981년 3월 1일 바비 샌즈가 주도한 제2차 단식투쟁이 시작되었다.[6] 맥게온은 샌즈 외 네 명의 수감자가 아사한 뒤인 7월 9일 단식에 동참했다.[7] 다섯 명이 더 사망했고, 맥게온도 단식 42일차인 8월 20일 혼수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이 그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료진을 개입시켜 맥게온은 살아났다.[7][8]
맥게온은 1985년 석방되었고 IRA 및 신페인당 활동을 계속했다.[1][8] 1988년 맥게온은 하사들의 참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었다.[9] 맥게온의 변호인 패트릭 피누케인은 증거불충분을 주장했고 받아들여져 11월 기소가 기각되었다.[9][10] 맥게온과 피누케인은 법원을 나서면서 함께 사진이 찍혔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피누케인은 1989년 2월 얼스터 방위협회에게 암살당한다.[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