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8년 12월 테오도루스 2세가 죽은 직후 어린 황제 요한네스의 섭정이던 게오르기우스 무잘론 형제가 죽는 궁정혁명이 일어났는데 당시 장군이었던 미하일은 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당시 8살이었던 요한네스 4세 황제의 섭정을 맡았다. 그 후 대공의 직함을 얻고, 최종적으로는 1258년크리스마스에는 공동 황제로 선포하였다. 이리하여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성립된 것이다.
몬페라토 방계 가문
안드로니코스 2세의 어린 아들이 그의 어머니의 후계자가 됨에 따라 몬페라토의 군주가 되었다. 몬페라토를 통치하는 그의 봉건 왕조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실 가문보다 오랫 동안 지속되었다. 이 상속은 몬페라토의 팔레올로고스 가문이 만토바 공국을 통치하던 곤차가 가문과의 혼인으로 마침내 단절되고 만다. 나중에 이 유산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로렌 가문 황제들을 배출해낸 중심이 된 로렌 공작들에게 넘어간다.
오스만 제국 치하 팔레올로고스 가문
모레아 전제공국의 데메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는 메흐메드 2세에 패배한 이후 에디르네로 옮겨졌다. 메흐메드는 그에게 트라키아 지역의 아이노스를 봉토로 주었다. 아이노스 지역은 소금의 산지로 유명했는데, 데메트리오스는 이 소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유용했다가 마흐무드 파샤 앙겔로비치에 의해 처벌받고 이 봉토를 회수당했다.[1]
다른 팔레올로고스의 후예들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징세청부업자로써 활동했다. 오스만 엘리트층에 흡수된 이들도 있었다. 메흐메드 2세의 대재상들 가운데 하스 무라트 파샤와 메시흐 파샤는 개종한 팔레올로고스였다.[2][3]
팔레올로고스 왕조가 배출한 황제들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 (1224 - 1282, 재위 : 1259 - 1282) – 스트라테고스(Strategos); 요안니스 4세의 섭정; 알렉시오스 3세의 증손자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 (Ανδρόνικος Β' ο Γέρος) (1258 - 1332, 재위 : 1282 - 1328) – 미하일 8세의 아들; 제위에서 물러남
미하일 9세 팔레올로고스(1277 - 1320, 재위 1282 - 1320)-안드로니코스 2세의 아들. 공동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 팔레올로고스 (Ανδρόνικος Γ' Παλαιολόγος ο Νέος) (1297 - 1341, 재위 : 1328 - 1341) – 안드로니코스 2세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