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우르사이스 아란다(스페인어: Ismael Urzaiz Aranda izmaˈel uɾˈθajθ aˈɾanda[*], 1971년 10월 7일, 나바라 주투델라 ~)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중앙 공격수로 활약하였다.[1]
물리적 힘과 공중 경합 능력으로 알려진 선수이나,[2]레알 마드리드 유소년부를 졸업하고 신통치 못한 행보를 보이던 그는 오랜 현역 기간 중에 7개의 구단에서 활동했는데, 대게 11년을 보낸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동하였다. 16시즌에 걸쳐, 그는 라 리가 통산 445번의 경기에 출전해 131골(머리로 61골을 넣어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었다)을 넣었다.[3]
우르사이스는 1991-92 시즌에 알바세테로 임대되었고, 1991년 10월에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가 1부 리그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1993년 초, 그는 또다른 1부 리그 구단인 셀타 비고로 임대되었지만,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 딱 한 골을 넣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프로 무대 방랑기
우르사이스는 1993년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완전히 결별하였고, 이어지는 3년 동안 라요 바예카노, 살라망카, 그리고 RCD 에스파뇰을 차례로 거쳤는데, 라요와 살라망카 소속으로 준수한 득점력을 보였다. 그는 살라망카의 1994-95 시즌 승격 주역이 되었는데, 알바세테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2번 골망을 갈라 5-0 대승을 견인했다.[6]
이듬해, 우르사이스는 35M Ptas의 이적료에 에스파뇰로 둥지를 옮겼고,[4] 1류 공격 자원으로 도약하였는데, 1부 리그에서만 13골을 기록했고 소속 구단은 4위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1996년 4월 14일 라요 바예카노와의 안방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으로 4-2 승리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7]
아틀레틱 빌바오
기량이 되살아난 우르사이스는 다수 구단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1996년 여름에 아틀레틱 빌바오로 500M Ptas에 이적하였고,[4] 나바라 출신이었기에 순수 바스크 구단 입단 조건을 만족했다. 11시즌 동안, 그는 367번의 리그 경기에서 115골을 기록하였다.[2]1997-98 시즌, 그는 32경기에서 8번 골망을 갈라 소속 구단의 준우승에 일조해 UEFA 챔피언스리그직행 진출권을 소속 구단에 선사하였는데, 이 대회에서 우르사이스는 7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었다.[5]
우르사이스는 산 마메스에서 보낸 11년 중 6시즌에 두 자리 수의 득점을 기록했지만,[8] 유소년부 졸업생인 1.95m 장신의 페르난도 요렌테가 급성장하면서, 그는 2007년 7월을 끝으로 바스크 연고 구단과 작별해야 했다.[9] 물론 그는 빌바오에서의 마지막 해에 35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지만, 은퇴할 나이가 되어가던 그는 6경기를 합해야 90분 출전한 것과 같은 기록을 낼 수 있었다.[10][11]
1996년 10월 10일, 0-0으로 비긴 체코와의 1998년 FIFA 월드컵예선전에서 우르사이스는 성인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지는 3년 동안, 그는 불과 3번의 경기에 더 출전하고 무득점으로 침묵하는데 그쳤지만, UEFA 유로 2000예선전을 치르는 과정에 3경기에서 6골을 폭격하여 대회 본선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이 중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2골, 키프로스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16] 이후 폴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두 골을 추가하고,[17] 그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열린 대회 본선에 참가할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총 25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은 후,[18] 우르사이스는 2001년에 버밍엄에서 0-3으로 완패한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19] 1997년과 2005년 사이, 그는 바스크 국가대표팀 경기에 7번 출전했는데, 2000년에 3-2로 이긴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