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
兪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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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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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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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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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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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부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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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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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兪棨, 1607년 ~ 1664년)는 조선의 문신으로, 자는 무중, 호는 시남(市南),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인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청과 척화를 주장하여 유배되었다. 1649년 인조가 죽자 다시 등용되어 부교리가 되었고, 장례 절차를 예론에 따라 시행토록 조선 효종에게 건의하여 그대로 실시하였다. 그는 특히 예론에 대해서 매우 뛰어난 학자였다. 1715년 숙종 때 그가 지은 《가례원류》로 인해 노론·소론 사이에 치열한 당쟁이 벌어졌다. 저서로 《시남집》 등이 있다.
가족 관계
- 증조부 : 유함(兪涵)
- 할아버지 : 유대경(兪大敬)
- 할머니 : 전주이씨, 이흠례의 딸
- 아버지 : 유양증(兪養曾)
- 어머니 : 남이신(南以信)의 딸
- 부인 : 전주이씨, 이산악(李山岳)의 딸, 세종의 10세손
- 장남 : 유명윤(兪命胤)
- 자부 : 윤형성(尹衡聖)의 딸
- 손자 : 유상기(兪相基)
- 손서 : 송무석(宋茂錫)
- 차남 : 유명필(兪命弼)
- 자부 : 민도(閔燾)의 딸
- 손자 : 유경기(兪敬基)
- 손서 : 이후곤(李厚坤)
- 손녀 : 기계 유씨
- 삼남 : 유명흥(兪命興)
- 자부 : 윤문거(尹文擧)의 딸
- 손자 : 유하기(兪夏基)
- 손자 : 유진기(兪晉基)
- 손녀 : 기계 유씨
- 손녀 : 기계 유씨
- 사위 : 윤구(尹捄)에게 출가
문화재
같이 보기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