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구스의 형은 카우산틴이고, 옹구스의 아들은 오간이고, 조카는 돔날 막 카우산틴이다. 이들은 모두 「알바인의 노래」에 언급된다. 「알바인의 노래」는 말 콜룸 3세 막 돈카다 치세 때 말 콜룸 3세 이전의 스코틀랜드 군주들을 나열한 찬양가인데, 여기에 페르구스 모르 이래의 달 리어타 왕들까지 소급되어 스코틀랜드 군주로 올라와 있다. 카우산틴과 옹구스 형제들을 비롯한 픽트인의 왕들이 「알바인의 노래」에 올라와 있음은 게일계 국가인 달 리어타가 픽트랜드를 정복함으로써 알바 왕국의 형성이 이루어졌다는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론되었다.[2] 하지만 현재는 이들 옹구스 일족이 「알바인의 노래」에 올라와 있는 것은 둔켈드와 세인트앤드루스 지역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 지역의 건설자로 여겨진 옹구스 일족을 포함시킨 것이라는 설이 제기된다.[3] 한편, 달 리어타 왕사를 재구성해본 결과 옹구스의 조카 돔날이 이 시기 달 리어타의 왕을 지낸(재위 811년-835년) 것도 사실이다.[4]
옹구스 2세는 오랫동안 세인트앤드루스의 건설자이자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 신앙(스코틀랜드의 국기의 유래가 되는)의 기원으로 여겨졌지만, 세인트앤드루스(옛 이름 켄릭모나드)의 기독교 신앙중심지는 옹구스 2세보다 한참 전에 이미 세워졌다. 알려진 최초의 켄릭모나드 수도원장투할란의 몰년은 747년이며, 켄릭모나드가 건설된 것은 옹구스 1세(재위 729년-761년) 또는 네크탄 4세(재위 706년-724년, 728년-729년) 때로 여겨진다. 때문에 세인트앤드루스 석관 역시 네크탄 4세 또는 옹구스 1세의 유해를 안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5]
옹구스 2세는 834년에 죽었고, 왕위는 조카 드레스트 9세 막 카우산틴이 계승했다.[6] 그 뒤 옹구스의 아들 오간이 다음 왕이 되었으나 839년 바이킹들에게 죽었다.
Anderson, Alan Orr, Early Sources of Scottish History A.D 500–1286, volume 1. Reprinted with corrections, Stamford: Paul Watkins, 1990. ISBN1-871615-03-8
Dauvit Broun, "Dunkeld and the origins of Scottish Identity" in Dauvit Broun and Thomas Owen Clancy (eds), op. cit.
Broun, Dauvit. "Pictish Kings 761-839: Integration with Dál Riata or Separate Development" in Sally Foster (ed.) The St Andrews Sarcophagus: A Pictish masterpiece and its international connections. Dublin: Four Courts Press, 1998. ISBN1-85182-414-6
Broun, Dauvit, "The church of St Andrews and its foundation legend in the early twelfth century" in Simon Taylor (ed.) Kings, clerics and chronicles in Scotland, 500-1297: : essays in honour of Marjorie Ogilvie Anderson on the occasion of her ninetieth birthday. Dublin: Four Courts Press, 2000. ISBN1-85182-516-9
Clancy, Thomas Owen. "Caustantín son of Fergus (Uurgust)" in M. Lynch (ed.) The Oxford Companion to Scottish History. Oxford & New York: Oxford UP, 2002. ISBN0-19-2116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