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결성 때 오자와 이치로 당시 신당준비위원회 위원장은 당명을 "보수당"으로 칭하자고 하였지만 주변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초대 당수 선거에는 전 자유개혁연합 대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 전 신생당 당수 하타 쓰토무 전 총리, 전 민사당 위원장 요네자와 다카시가 맞붙어 가이후 도시키가 당선되었다.
결성 당시 소속 국회의원은 214명(중의원 176명, 참의원 38명)으로 창당시 국회의원 수가 200명이 넘는 정당이 창당된 것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39년만이었다.
공식 영어 명칭으로 "New Progressive Party (신진보당)"이라고 칭하자는 말이 나왔으나 "New Frontier Party (신개척지당)"으로 결정되었고 약칭은 "신진, NFP"로 결정되었다.
1995년12월 가이후 도시키의 임기가 끝남에 따라 열린 제2회 당수 선거에서 하타 쓰토무와 오자와 이치로가 맞붙어 오자와 이치로가 당선되었다.
1994년12월 초대 당수 선거에서 탈락한 하타 쓰토무 지지파들은 이후 당 운영을 둘러싸고 오자와 이치로의 대립을 심화시켜 탈당하게 된다.
1996년10월 20일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목표로 제1야당으로서는 38년만에 중의원 의석 정수의 과반 이상의 후보를 옹립했다. 소비세 비율을 20세기동안 지연시킬 생각이었으나 소비세 감세 및 그에 따른 경제 활성화에 의한 재정 재건을 공약으로 내세웠음에도 해산되기 전 의석은 과반에 닿지 않았다.
해산
총선거 이후 하타 쓰토무,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탈당과 자민당의 분리 공작으로 구심력을 잃고 있었다. 당 집행부는 자민당과의 대연정 구상을 모색하고 자민당 내에서의 몇몇 당원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대론이 생기게 되고 오자와 이치로의 구심력을 더 잃게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오자와 이치로의 당수 임기 끝으로 열린 3대 당수 선거에서는 오자와 이치로와 카노 미치히로 전 농림수산대신이 맞붙어 오자와 이치로가 재선하였다. 오자와 이치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같은 달 27일 양원 의원 총회의를 열고 신진당의 해산과 신당 결성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신진당은 6당으로 분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