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개(荀愷, ? ~ ?)는 중국삼국 시대조위 ~ 서진의 관료로, 자는 무백(茂伯)[1], 소자(小字)는 호자(虎子)[1]이며 예주영천군 영음현(潁陰縣) 사람이다. 순욱의 증손자이다.
행적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외조부 사마의가 순개에게는 호자(虎子)·아우 순회(荀悝)에게는 용자(龍子)라는 자를 지어주었다.[1]
순익(荀霬)과 사마씨(司馬氏)[2]의 차남이며,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었다.[3]함희(咸熙) 연간, 오등작 제도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공로에 힘입어 남돈자(南頓子)에 봉해졌다.[3]
경원 3년(263년), 촉 정벌에 종회 아래에서 호군(護軍)으로 종군하여, 장빈(蔣斌)이 5천 명으로 지키는 한성(漢城)을 1만 명을 거느리고 포위했다.[4] 다만 성을 함락하지는 않았고, 장빈은 촉한 조정이 등애에게 항복한 후에야 종회를 찾아가 항복했다.[5]무제 시절에는 시중을 지냈으며,[6] 나중에 관위가 정서대장군에 이르렀다.[7]
무무(武茂)와 친교를 맺으려 했으나, 거절당하여 원한을 품었고, 원강 원년(291년), 양준이 피살되었을 때 당시 상서복야로서 무무가 양준의 이종아우이므로 양준의 무리라고 무함하여 죽였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