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월 16일(양력) 마산 (주)경향고무 사장인 손상호(孫相鎬)와 김근이(金劤伊, 손명순의 생모[3])의 장녀로 경상남도김해군(현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부친 손상호는 한때 영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무공장을 운영하며 '마산재벌'로 불렸다.[4] 두 여동생 신자와 말득이 태어났으나 일찍 사망했고, 생모 김근이도 1935년 사망했다. 부친 손상호는 이후 감덕순(甘悳順)과 재혼했으며, 그의 부친과 계모 감덕순 사이에서 남동생 2명과 여동생 6명이 더 태어났다.
진영공립보통학교(현 진영대창초등학교)를 졸업했다.[5] 대창초등학교는 노무현 대통령과 배우자인 권양숙의 출신학교로도 알려져 있어, 이 학교는 대통령 및 대통령의 배우자 세 명을 배출한 것이 된다.[5]
마산여자중학교와 마산여자고등학교를 거쳐[6]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고, 1951년 김영삼과 결혼하였다. 당시 이화여대 3학년에 재학 중으로, 이화여대는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도움으로 첫 아이를 낳고도 졸업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7][8]
남동생 손은배는 김영삼의 최측근이기도 했던 김동영(金東英) 전 정무장관과 동국대학교 동창이었다.[9] 그는 김영삼의 일가친척 중 당국으로부터 많이 핍박을 받았다 한다. 10월 유신 이후인 1974년 한때 강제로 교직을 사임했다가, 1980년 순위고사를 거쳐 다시 서울 인헌국민학교(仁憲國民學敎)로 복직하여 교단에 섰다.[9] 그러나 남편인 김영삼에게 불평 불만 한번 나타내지 않고 그의 야당 활동을 후원하였다.
1983년 5월 18일 김영삼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 기념일에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항의로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했을 때 직접 간호하였다.
대통령 배우자 시절
1992년 12월 18일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3년 2월 24일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손명순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통령 배우자 시절에는 청와대 수행원들 및 운전기사, 여성 직원들을 위한 식당이나 휴게실을 만들었다.[10]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용한 내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11]
말년
배우자인 김영삼의 사망 후 상도동의 사저에서 거주하며 말년을 보냈다. 2022년 12월 코로나19에 의한 폐렴으로 입원했다.[12] 증세가 악화되어 2024년 3월 7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망하였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