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티우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미묘한 점에 이르기까지 시(詩)로 재현시키려 하였다. 로마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시도였다. 그가 취급한 것은 에피쿠로스의 자연학 부분이다. 라틴역(譯)으로, 그 의미를 본다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고 번역된다. 사물(事物)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일체(一切)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학이 주로 되어 있고 에피쿠로스파의 주장이나 윤리관, 주관적인 것을 간혹 첨가시켜 놓은 데 불과하다. 그는 자연학을 기술한 후 윤리 방면에도 확대하려 하였다. 작품 내용의 추이(推移)상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 작품도 미완성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原子) 상호의 충돌은 중량의 차에 의한 낙하 속도(落下速度)의 상위(相違)가 원인이라 하고 있다. 루크레티우스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경운동(斜傾運動)'을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도 이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나 그 논지는 애매하고 난해했다.
이 작품은 키케로의 주선으로 출판된 듯하나 대중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일부 사람은 일찍부터 충분히 진가를 인정하고 있었다. 후배인 베르길리우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언제인가 대지(大地)가 멸망하는 날이 있다면 그날이야말로 숭고한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멸실하는 날일 것이라고 하여 이 작품의 영속성(永續性)을 예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