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병진책은 성공만 했다면 남해안의 왜성들에 웅거하고 있는 일본군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동로군의 울산성 전투는 승리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패배했고, 사천성 전투 역시 패배했다. 그리고 왜교성 전투의 경우 서로군과 수로군의 손발이 맞지 않아 조명연합군은 3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큰 피해를 입었으며 황세득 등 장교들까지 일부 전사하며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최종 결전인 노량해전에서 시마즈군을 궤멸시켰으나 나머지 일본군은 탈출에 성공했으며, 조선 해군 사령관인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하였다.
사로병진이 마무리된 이후 남해도의 일본군을 공격(남해왜성 소탕전)함으로써 정유재란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