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오데르 공세(러시아어: Висло-Одерская операция)는 1945년 1월부터 1945년 3월까지 진행된 소련의 군사 작전으로, 독소 전쟁의 우측 전선에 벌어졌다. 게오르기 주코프가 이끄는 제1벨라루스 전선군과 이반 코네프가 이끄는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이 나치 독일의 A 집단군과 맞서 싸웠다. 비스와-오데르 공세 동안, 소련군은 전선 서쪽의 폴란드 영토를 점령한 뒤 오데르강의 좌안에 있는 교두보를 점령했고, 이 교두보는 나중에 베를린 공방전 때 사용되었다. 소련군은 20일 동안 하루에 20km에서 30km씩 진격하고 있었다.[4] 비스와-오데르 공세 동안 소련군은 7개의 요새화된 방어선을 돌파했고, 2개의 큰 강을 건넜다.
비스와-오데르 공세를 통해 소련군은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진격으로 인한 후방 소탕 문제,[5] 병참 문제, 그리고 포메라니아에 주둔한 독일군과의 교전 등으로 게오르기 주코프는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것을 멈추었다. 이로 인해 1945년 4월이 되어서야 소련군은 베를린에 대한 공세를 펼칠 수 있었다.
배경
1945년 1월까지 독일군은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헝가리와 동프로이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서부 전선에서도 서서히 후퇴하고 있었다. 이아시-키시뇨프 공세에서 소련군은 독일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플로에슈티 유전 지대(루마니아)를 점령하여 독일군의 전력에 영향을 미쳤다.[6] 연합군의 폭격으로 독일 산업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공군은 거의 전멸했고 인적 자원도 소진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4년 12월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서 대규모 공세인 벌지 전투를 시작하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려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7]
붉은 군대는 비스와강 뒤쪽에 위치를 잡았고, 여름 공세가 끝나기 전 강 서쪽의 몇몇 교두보를 점령한 후 거의 반년 동안 이 교두보들을 지키고 있었다. 1944년 가을과 겨울 동안 병력과 장비를 보강하며 공세를 준비했고, 독일군 또한 방어를 준비하며 폴란드 전역에 걸쳐 남북으로 여러 방어선을 구축했다. 1944년 11월 28일, 최고사령부는 바르샤바-라돔 방면의 독일군 집단을 격파하라는 지시(지령 번호 220275)를 제1벨라루스 전선군 사령관에게 내렸다.[8]
소련군은 제1, 제2, 제3벨라루스 전선군과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을 동원한 대규모 공세를 계획했고, 목표는 독일군을 오데르강으로 몰아내는 것이었다. 독일 육군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 상급대장은 이 작전 준비 상황을 여러 차례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고했지만, 히틀러는 이를 소련의 선전이라고 여기며 믿지 않았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