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성지는 연제구 연산동에 위치한 배산(盃山)의 중턱과 정상부에 있는 옛 성터로, 이 지역의 옛 지명인 거칠산국(居漆山國)시대의 유적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3]
『삼국사기(三國史記)』 「거도열전(居道列傳)」에 보면 신라 제4대 탈해왕 때 거도(居道)라는 장수가 거칠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병합하고 거칠산군을 두었다고 하였다.[3]
『삼국사기』 기록에 나타난 정확한 시대(연대)에 대해서는 고증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지만,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시기로 본다면 배산성지가 있는 동래 지역(연제구 지역 포함)은 신라에 병합되기 전의 부족국가시대(部族國家時代, 삼국시대)였다는 사실은 추측이 가능하다.[3]
또한 배산성지 아래 쪽 능선에는 연산동고분군(사적 제539호)이 있고,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는 복천동고분군(사적 제273호)과 마주보고 있어 배산성과 복천동고분군 및 연산동고분군 사이의 관계가 주목된다.[3]
배산성은 배산의 산허리를 돌로써 둘러쌓은 테뫼식의 산성으로 2017년 ~ 2018년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산 정상 바로 아래는 원형 집수지 2기가 발굴되었다.[3]
배산성지는 동래고읍성(東萊古邑城, 수영구 망미동 부산지방병무청 일원) - 동래읍성(東萊邑城,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 제5호)으로 이어지는 부산(동래) 지역 치소(治所)의 변천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적이다.[3]
명칭 유래
배산은 해발 256m로 부산에서 가장 낮은 산중 하나이다(금정산 801m, 장산634m, 황령산427m), 높이가 얼추 황령산의 반밖에 되지 않지만 부산의 도심 한가운데 허파처럼 자리한 산이다. 말 그대로 술 잔(盞)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잔뫼산'이라고도 불린다
연구
앞선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성벽의 서쪽으로 연장 발굴한 3차 발굴조사에서는 외벽에서 통일신라시대 축성법으로 알려진 층단식성벽(層段式城壁 성벽석을 조금씩 안으로 들여쌓아 각 단이 층이 지게 쌍는 방식)이 양호하게 확인되었다. 참고로 층단식성벽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던 축성 기법으로 좌우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성벽과 기단보축이 위치한다.[4][5]
출토 유물
2017년에는 영남권 최대 규모의 삼국시대 원형집수지 2기가 조사되었다. 집수지 내에서는 을해년 목간(乙亥年 木簡 555년, 615년, 675년 중 하나)과 대나무제 대형 발 등의 유적이 출토되었다.[6]
통일신라시대 당시 축조된 성벽 바깥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토기나 기와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청동추나 청동합 저부편, 어망추 등 실용구들도 함께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