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성(무안) 박씨(綿城 朴氏)의 시조인 박진승(朴進昇)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34세손으로, 신라 제54대 군주 경명왕 박승영(景明王 朴昇英)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대군 박언화(完山大君 朴彦華)의 5세손이다. 박진승(朴進昇)은 고려조(高麗朝)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국자좨주(國子祭酒(국자제주))를 지냈으며 국속을 기자8조로 교화한 공(功)을 세워 무안(務安)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다.
박진승의 아들 박섬(朴暹)이 남행(南行)하는 현종(顯宗)을 호종(扈從)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1052년(문종 6) 공신각상에 도형(圖形)되었다.
박승중 - 고려전기 해동비록, 시정책요 등을 편찬한 문신으로,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로서 상정관(詳定官)이 되어 예의(禮儀)를 정하였으며, 인종(고려)이 즉위하자 보문각학사로 김부식(金富軾)과 더불어 ‘예종실록’의 편수관이 됨. 이자겸이 국정을 맡게 되자, 그에게 아부하여 참지정사를 거쳐 수태위(守太尉)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승진하였으나, 이자겸이 몰락하자 탄핵을 받고 울진(蔚珍)에 유배되었으며, 여러 대를 섬긴 공로가 참작되어 무안에 안거함.
(무안박씨)는 조선시대 25명의 문과급제자, 63명의 무과급제자, 사마시(진사)급제자 58명을 배출하였다.
본관
무안(務安)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때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성종 때 다시 무안으로 고쳤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무안현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면천(綿川)·면성(綿城) 등의 고호(古號)가 있었다. 1895년(조선 고종 32) 무안군이 되었으며 1897년 무안부(務安府)로 승격되었고, 1914년 목포부(木浦府)가 분리되면서, 나머지 지방은 무안군이 되었다. 무안(務安) 박씨는 본관 면성 박씨(綿城 朴氏)와 본관 무안 박씨(務安 朴氏)의 족보를 통칭하여 무안 박씨(務安 朴氏)로 불리며, 가족관계부상에서는 면성(綿城) 박씨와 무안(務安) 박씨가 구분되어 있다.
분파
개성파(開城派) - 박한정, 박한침, 박한충, 박춘수
한산파(韓山派) - 박원악, 박원산
장단파(長湍派) - 박원
지평파(砥平派) - 박원성, 박원겸, 박원눌, 박원근, 박원상
함양파(咸陽派) - 박대춘, 박세언
개부파(開府派) - 박대년
노성파(魯城派) - 박증, 박호, 박한
무안파(務安派) - 박익경
군수공파(郡守公派) - 박항경
경파(京派) - 박진경
우후공파(虞候公派) - 박숭인
첨사공파(僉使公派) - 박숭의
적성파(積城派) - 박숭례
해남파(海南派) - 박종정
진도파(珍島派) - 박화
영암파(靈巖派) - 박종원
음죽파(陰竹派) - 박원근, 박숙근
영해파(寧海派) - 박지수, 박지몽, 박지승
양주파(楊州派) - 박지겸
공주파(公州派) - 박춘량
홍산파(鴻山派) - 박영준
당진일파(唐津一派) - 박곤, 박경, 박수
당진이파(唐津二派) - 박윤신
당진삼파(唐津三派) - 박경근, 박사길, 박권
당진사파(唐津四派) - 박영
당진오파(唐津五派) - 박연, 박순환
인물
시조 박진승 - 완산박씨 8세 은견(銀堅)의 아들, 국학전주 또는 국자좨주 역임, 국속을 순화한 공으로 무안군에 봉해지고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음.
2세 박섬 - 중시조 박진승의 아들, 고려 현종 때 남행호종공신(南幸扈從功臣)으로서 벼슬이 우복야에 이르렀으며 명신.
박승중 - 고려전기 해동비록, 시정책요 등을 편찬한 문신으로, 한림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로서 상정관(詳定官)이 되어 예의(禮儀)를 정하였으며, 인종(고려)이 즉위하자 보문각학사로 김부식(金富軾)과 더불어 ‘예종실록’의 편수관이 됨. 이자겸이 국정을 맡게 되자, 그에게 아부하여 참지정사를 거쳐 수태위(守太尉)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승진하였으나, 이자겸이 몰락하자 탄핵을 받고 울진(蔚珍)에 유배되었으며, 여러 대를 섬긴 공로가 참작되어 무안에 안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