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부터 시작된 러일 전쟁 당시 주미공사로 활약했다. 이 전쟁에서 시종 우세를 유지하고 있던 일본은 당시의 국력으로는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한계였다. 때문에 당시 영국, 프랑스 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으로 성장하여 ‘전통적인 고립주의’(먼로주의)에서 벗어나 국제적 권위를 높이려고 하는 미국에게 대해 쓰시마 해전 승전 후인 1905년 6월 ‘중립적, 우의적 알선’을 제의했다. 알선 의뢰는 고고로 주미 공사에 의한 것으로, 이 제안으로 평화 협상의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고고로는 같은 해 8월부터 군항 포츠머스에서 개최된 러일 강화 회의에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와 함께 전권 위원으로 참석하여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 체결에 진력을 다했다.
1906년 강화가 이루어진 성립 공적으로 남작의 작위가 주어졌고, 그해부터 다음 1907년에는 칙선되어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1908년 주미대사가 되었고, 11월말에는 극동, 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토 인식의 확인과 무역, 산업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의 국무장관 엘리후 루트와 협상을 벌여 〈루트 다카히라 협정〉을 맺었다. 이것은 미국이 하와이 왕국 병합과 필리핀에 대한 관리 권한을 가지고, 일본이 만주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미국이 각각 상호 승인한 것이었다. 또한 성문화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병합과 만주 남부의 지배를, 일본은 캘리포니아에 미국에 의한 이민의 제한을 각각 묵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