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대한제국 고종 8년)의 전국적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된 유서 깊은 전국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충청 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1881년(고종 18년)에 이르러 숲 말의 서원이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뜰 앞까지 물이 차므로 조금 높은 지대인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건립
돈암서원은 본래 현재 위치의 서북쪽 1.5km 떨어진 임리 숲말에 있었다. 연산천에 가까이 있고 지대가 낮아 수해를 입어 1880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 숲말에 돈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본래 은둔하는 곳이다라는 뜻의 둔암에서 온 말이다. 김장생이 은둔하며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쓰고자 했던 마음이 담겨 있다. 김장생은 양성당을 지으며 기록한 글에 대둔산이 남쪽에 있고 북쪽에는 계룡산이 솟았다고 했으며 양성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산을 우러르며 즐기고 시내를 내려다보면 물을 살피며 자연 경물을 접하는 대로 이치를 깨닫는다"고 적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