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결사팔대의 한 사람으로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인물인 세이무(成務) 때에 노토노 구니노미야쓰코(能等国造)가 설치되었다는 전승에서 처음으로 '노토'라는 이름이 나오며, 이후 유랴쿠(雄略) 때에 하쿠이노 구니노미야쓰코(羽咋国造)가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허구적인 전설과 실제 역사적 사실이 혼재되어 있는 시대의 전승이다.
요로(養老) 2년(718년) 5월 2일, 에치젠 국(越前国)에서 하쿠이(羽咋), 노토(能登), 후게시(鳳至), 스즈(珠洲) 4개 군을 떼어 율령국으로써의 노토 국이 성립되었다.[1]
↑『만요슈』(万葉集)에는 노토 국이 엣추 국에 병합되었던 시기에 엣추의 태수(카미)가 되었던 오토모노 이에모치(大伴家持)가 덴표 20년(748년)에 엣추 국의 여러 군을 순행하며 노토 국에 해당하는 땅에서 읊은 노래(권17・4025〜4029번째)나, 덴표칸포(天平感宝) 원년(749년) 5월 14일에 아내를 위해 스즈 군의 진주(真珠)를 구한 노래(권18・4101〜4105번째)가 남아 있다.
↑「구고구령취조장」은 노토 고쿠분(国分)이 빠져 있어서 木村礎가 「덴포 향장」(天保郷帳)을 토대로 작성, 「日本史料選書13 旧高旧領取調帳 中部編」(近藤出版社、1977年)에 게재된 데이터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国立歴史民俗博物館)에 의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