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역대 국왕과 왕비, 추존왕과 추존왕비의 능으로, 폐위된 우왕과 창왕의 능은 조성되지 않았으며 우왕의 생모인 순정왕후의 의릉(懿陵)은 1389년 12월 철거되었다.[1]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능은 2기가 존재하나 어느 것이 진짜 무덤인지 불확실하다.
개성을 수도로 두었던 고려왕조의 역사성으로 인해서 일부 왕릉을 제외한 나머지가 대부분 북한 지방에 많이 존재하는 편이며 강화 천도기에 만들어진 고려왕릉 5기가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고려의 왕릉은 개성 부근 산악지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능의 소재가 분명한 것은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을 비롯한 19릉이다. 고려의 왕릉은 이민족의 침입과 병란으로 인한 도굴 및 조선시대의 개축 등을 거치면서 원형이 많이 변하였으나, 현릉, 소릉과 칠릉군(七陵群)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왕릉의 발굴과 관련하여 2016년 6월, 북한 개성에서 9대 덕종의 숙릉과 10대 정종(靖宗)의 주릉 등 고려왕릉 2기가 새롭게 발굴되었다.[2]
고려왕릉의 능역은 남북으로 긴(18×36m) 장방형에 돌담은 동서북 3면으로 두르고 능 앞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네 개의 층을 두고 단이 낮아져 최상단에는 능과 석상, 망주석이, 제2단에는 장명등을 사이에 두고 문석인을 세웠으며, 제3단에는 무석인을, 제4단에는 정자각과 능비를 세웠다. 능의 봉분 높이는 3∼5m이며 지름은 6∼9m 정도로 그 하부는 신라 왕릉에서처럼 면석과 십이지상의 호석을 둘렀고 그 밖으로 돌난간과 석수가 배치되었다.
919년 철원에서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대다수의 왕릉은 개경과 경기 주변에 설치되었으나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1270년 개경으로 환도하기까지 38년동안 왕릉은 강화도에 축조되었다. 희종의 석릉, 성평왕후의 소릉, 원덕왕후의 곤릉, 고종의 홍릉, 순경태후의 가릉을 포함하여 경기도고양시와 강원특별자치도삼척에 위치한 공양왕릉이 고려 왕릉중 유일하게 대한민국에 위치한다. 인천광역시는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를 설립하고 강화 고려왕릉의 세계문화유산을 추진하고 있다.[3]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묻힌 현정릉은 고려 왕릉중 유일하게 쌍봉 형식의 왕릉으로, 봉분 내부에 석실이 존재하며 석실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현릉과 정릉을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뚫려있는데,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왕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