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開元, 713년 12월 ~ 741년)은 당나라(唐)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의 두번째 연호이다. 28년 1개월 동안 사용되었다.
개원이라는 연호에는 새로운 시작을 연다는 의미가 있으며, 당 왕조의 역사에서 개원 연간은 국가가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로 평가받는다. 역사에서는 당 왕조의 전성기였던 개원 시대를 두고 개원성세(開元盛世), 또는 개원의 치라고도 부른다. 또한 개원통보(開元通寶)라는 이름의 금속 화폐가 발행되었다.
개원 원년(713년), 당 왕조는 하서구곡(河西九曲)의 땅을 토번으로 시집간 금성공주(金城公主)의 탕목읍(湯沐邑)으로 증여하는 형태로 토번에 넘겨주었다.
개원 2년(714년) 7월, 당의 장수 설눌(薛訥)이 이끄는 군이 거란(契丹)을 쳐서 난수곡(灤水谷)에서 패배시켰다.
개원 2년(714년), 8월과 10월 사이 토번이 당의 위원(渭源)을 거듭 쳐들어왔고, 당의 장수 설눌과 왕준(王晙)이 10월에 토번을 무가(武街)에서 크게 쳐부수고 장성보(長城堡)까지 추격해 다시 토번을 패배시켰다. 당의 장수 왕해빈(王海賓)이 이 싸움에서 전사하자 그의 어린 아들이 현종에게서 왕충사(王忠嗣)라는 이름을 받고 궁중에서 자라났으며, 훗날 당조의 명장이 됨.
개원 4년(716년) 7월, 돌궐의 카파간 카간이 토쿠즈 오구즈를 정벌하고 돌아오던 도중에 토쿠즈 오구즈의 병사에게 피살되다. 퀼테긴과 톤유쿡이 카파간 카간의 아들 이넬 카간을 죽이고 형을 카간으로 세우다(빌게 카간).
개원 4년(716년), 개원 3대 고승(三大士)의 한 사람인 선무외(善無畏)가 장안으로 오다.
개원 4년(716년) 12월, 요숭(姚崇)이 재상에서 물러나고 송경(宋璟)이 재상으로 임명되다.
개원 6년(718년),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관변 서원인 여정수서원(麗正脩書院)을 창설하였다.
개원 22년(734년),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 장수규(張守珪)가 글안을 쳐부수다. 훗날 글안에서 내란이 발생, 아관(牙官) 이과절(李過折)이 글안의 왕 굴렬(屈烈)과 권신 가돌간(可突干)을 습격해 죽이고는 무리를 거느리고 당에 투항, 당의 동북쪽 변경이 이후 차츰 안정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