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겐인이 죽고 난 뒤인 1629년 18세의 마사유키는 친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제3대 정이대장군도쿠가와 이에미쓰는 근면 성실함과 유능함을 겸비한 이복동생을 예외적으로 총애하여 1636년데와야마가타번 20만 석을 배정하였다. 1643년무쓰아이즈번 23만 석의 다이묘로 임명되면서 호시나 마사사다도 다이묘가 되도록 요청하여 호시나 가문을 지키게 하였다. 마쓰다이라씨를 사용하라는 막부측의 권유도 있었지만, 호시나 가문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거절하였다. 제3대 번주 마사타카 대에 와서야 마쓰다이라씨를 사용하고 신판 다이묘의 반열에 들었다.
1651년 이에미쓰는 임종시 마사유키에게 「도쿠가와 종가를 부탁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감명받은 마사유키는 1668년 「아이즈 가훈 15조목」을 정했다. 제1조에 「아이즈번 사람은 막부를 수호해야 할 존재이며, 다이묘가 이를 배반해도 가신은 따라서 안 된다」고 적어 이후의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은 모두 이를 충실히 지켰다. 막말의 다이묘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는 이 유훈을 지키기 위해 막부수호의 중심인물이 되어 끝까지 유신 세력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