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영어: Hyundai Group, 現代그룹)은 1950년1월 10일 출범한 현대건설을 모태로 하여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이었다. 1977년부터 2000년까지 24년 동안 대한민국 내 자산총액기준 재계서열 1위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자리잡아왔으나, 2000년가을의 2세대 오너들 간 경영권 분쟁, 2001년 3월 창업주 정주영의 사망과 현대그룹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열사들의 분할·해체로 인해 사업부문별 계열 분리(소그룹화)를 겪으면서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한때 재계 서열 1위였던 현대그룹은 최근 현대상선마저 계열 분할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자산 규모 5조원 이상)에서 제외되어 '중견기업'의 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현대그룹이 2012년 당시 매각한 연지동 본사 사옥을 5년 만에 되찾는 것을 계기로 현정은 회장의 그룹 재건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관측되고 있다.
현대그룹을 위기에 빠뜨렸던 현대상선이 2016년 7월 계열 분리되면서 그룹도 점차 안정을 찾고 있으며, 그룹 주축이었던 현대상선과 현대증권(현 KB증권)·현대택배 (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규모 면에서 매우 작아졌지만,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고군분투하며 재건을 모색하고 있다.[1]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 설치 대수는 2017년 2·4분기 5,825대로 전년 동기 5,024대보다 16% 급증했다. 2017년 6월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월간 설치 대수가 2,000대를 넘겼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상선 지원에 따른 자금 부담'이 사라졌다’면서 잇따라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점유율 1위인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려 해외 법인 수도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
현대그룹의 사업확장이 거둔 성공은 현대 그룹에 탄탄한 자금력을 가져다 주었음은 물론, 대한민국 사회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기회로 삼아 이 시기부터 창업주인 정주영이 본격적으로 정계 진출을 선언함으로써 기존의 현대그룹은 정세영, 이명박 등 전문 경영인이 이끄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창업주인 정주영이 정계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실패한 이후 정몽구, 정몽헌 등 2세대가 그룹을 이끄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한편 이 시기 현대는 일관제철소 건립을 시도하였고 기아자동차 인수 인계를 통한 규모의 경제실현을 이끌어냈으며 첫 모체 진로그룹의 부실로 위기에 처한 GTV 인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2] 이렇게 기틀이 잡혀가는 시기 현대그룹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과 동시에 대북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1999년 6월 30일 기아 계열사 중 하나인 아시아자동차공업은 기아자동차에 흡수 합병됐으며 그 탓인지 기아자동차가 당시 인수된 그룹인 해당 그룹(현대)에 속했던 현대자동차가 모기업인 전북 현대 다이노스가 이 날(VS 안양LG), 7월 7일(VS 천안일화), 8월 21일 (VS 울산현대), 8월 25일 (VS 천안일화) 프로축구 경기를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있었던 광주에 위치를 둔 무등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치름.
소그룹화 (계열 분할)
현대그룹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과 빅딜 정책계획에서 현대그룹 밀어주기 정책의 일환으로 사업부문별 전문화를 구상하였으나, 결국 사업부문별 소그룹화라는 밑그림을 그려나가게 된다. LG반도체, 한화에너지 정유부문 한화에너지프라자 인수합병으로 엄청난 빚을 떠맡게 됨과 동시에 2세대 오너 간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서 유동성위기에 직면하면서 현대계열의 모든 계열사들의 주가폭락과 현대그룹의 비리가 완전히 드러나면서 1977년부터 재벌 재계서열 1위를 지켜왔던 현대그룹이 2001년부터 삼성그룹과 LG그룹에게 각각 1위, 2위 자리를 내줌과 동시에 현대그룹의 위상이 완전히 추락하였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는 여러재계로 나뉘었어도 현대자동차그룹은 재계 1, 2위권을 대신 지켜내고 있다.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이후에 돌연승계한 현정은 회장이 같은 해 10월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현대그룹은 여성경영인에 의해 이끌어졌다. 이 시기부터 현대그룹은 해운, 물류, 금융 등의 사업축을 구성한 기업집단으로 다시 자리잡았으며 선대 경영자들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지속해나갔다. 그러나 2008년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 조짐을 보이면서 대북 사업의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는 현대그룹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는데 부담을 주는 계기가 되었고, 때문에 현대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동력의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에 진행한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의 인수 인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행보는 이를 자세하게 입증해주었으나 결국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고 말았다.
현대전자: 1983년에 삼성의 반도체를 추월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금성사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하였고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실행하여 LG반도체를 인수 후 인수대금 문제로 현대전자의 유동성 위기로 그었고 결국 하이닉스반도체로 변경이 된 후 전문 반도체 기업으로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할되었고, 2012년3월에는 SK텔레콤이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현재는 SK하이닉스로 변경하였다.
현대 유니콘스: 1995년9월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고 1996년3월부터 개명하면서 한국 시리즈 4회 우승(1998, 2000, 2003, 2004)을 기록하였으나, 2007년10월 타 업체와의 매각이 성립되지 않아 공식해체를 결정하였으며, 남아있는 선수들과 코칭 스텝들이 우리 히어로즈로 결성하며 신생창단을 하였다. 그 외에도 남아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KIA 타이거즈 재정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1986년부터 현대중공업 소속의 현대중공업 여자 농구단 → 1990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산업개발 소속의 현대산업개발 여자 농구단 →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건설 소속의 청주 현대 하이페리온으로 관리하면서 1회 우승(2002 여름)만 기록하다가 2004년6월에 신한은행으로 매각하면서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現: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라는 구단명으로 변경하게 만드는 재정 변동 시사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