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칠디스(Richildis) 또는 프로방스의 리첼다(Richilde of Provence ), 아르덴의 리첼다(Richilde of the Ardennes, 840년/845년 – 910년6월 2일)는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자 서프랑크 왕국 대머리 카를 2세의 후궁이자 계비, 서로마 제국의 황후였다.
아르덴 출신으로, 아르덴 변경백이자 메츠 변경백 비비누스 고르즈와 장로 보소의 딸 리첼다의 딸로, 그의 남동생은 프로방스와 부르고뉴에서 자립한 보소 5세, 부르고뉴 공작이자 오툉 백작 리샤르 정의공이었다. 그녀의 친정 이모 토이트베르가는 로타링기아의 왕 로타르 2세의 정비 토이트베르가 또는 테우데베르가였다.
869년10월오를레앙의 이르멘가르트가 죽자, 리첼다와 그의 일족은 이르멘가르트의 장례식 행렬에 참가했다. 리첼다는 곧 대머리 카를 2세의 계비가 되었다. 그는 어려서 죽은 쌍둥이 피핀과 드로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아들 1명, 아들 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딸 로틸드를 안겨주었다.
877년 10월 대머리 카를이 브리데레벵에서 늑막염으로 갑자기 죽고 말더듬이 루이 2세가 즉위하기 직전, 리첼다는 잠시 섭정으로 정무를 주관하였다. 이때 리첼다는 루이 2세의 즉위를 반대, 방해하고 루이 2세에게 충성을 거부하는 귀족들을 지원하였으나 꽁피에뉴에서 협상하여 루이 2세의 즉이를 승인하고 왕관과 예복을 보내주었다.
879년4월 10일말더듬이 루이가 갑작스럽게 죽자 그녀는 서프랑크의 섭정이 되려 하였으나 귀족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녀는 남동생 보소 5세를 서프랑크의 왕으로 앉히려다가 서프랑크 귀족들의 집단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는 남동생 보소 5세를 프로방스에서 자립하고 왕이 되는 것을 암암리에 도와주었다.
서프랑크의 귀족들은 그를 남동생과 간통했다며 근친상간 혐의를 씌워 재판정에 세웠으나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882년루이 3세의 사망과 884년 카를로만 3세가 사망했을 때 그는 섭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당시 제국은 노르만족, 마자르족의 습격, 약탈을 받고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동요했고, 동프랑크의 비만왕 카를 3세와 그를 지지하는 아키텐 귀족들의 반발을 시작으로 서프랑크 귀족들의 반발에 이어 그녀를 추방했다. 그는 프로방스로 가도록 강요했다.
그는 친정 조카인 맹인왕 루트비히의 왕국으로 물러났다가 910년 6월 2일에 사망하였다. 914년 1월 30일 랭스의 성 레미 수도원에 그의 부곶소식을 그록한 문서가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