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러시아어: Паве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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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세대 러시아 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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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재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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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로비치
- 니콜라이,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르, 알렉세이, 세르게이, 파벨
- 콘스탄티노비치
- 니콜라이, 콘스탄틴, 드미트리, 뱌체슬라프
- 니콜라예비치
- 니콜라이, 표트르
- 미하일로비치
- 니콜라이, 미하일, 게오르기, 알렉산드르, 세르게이, 알렉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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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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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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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3일(186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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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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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차르스코예 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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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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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월 30일(1919-01-30)(5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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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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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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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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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슈타인고트로프로마노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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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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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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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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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폰 헤센다름슈타트 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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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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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알렉산드라 (1889년 결혼 ~ 1891년 사별) 올가 발레리아노브나 팔레이 (1902년 결혼 ~ 1919년 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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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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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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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러시아어: Паве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1860년 10월 3일 ~ 1919년 1월 30일)은 러시아 제국의 황족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렉산드르 2세와 마리 폰 헤센다름슈타트 대공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889년에 결혼한 첫 아내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알렉산드라가 낳은 두 자녀는 형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형수 엘리자베트 폰 헤센다름슈타트 대공녀가 잠시 맡아 키운 적이 있다.
1902년에는 올가 발레리아노브나 팔레이와 귀천상혼을 했지만 당시 러시아 제국에서는 귀천상혼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1902년부터 1914년까지 프랑스 파리에 거주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아내와 함께 러시아 제국으로 귀환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볼셰비키의 감시를 받았다. 러시아 내전이 진행 중이던 1919년 3월 10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서 볼셰비키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자녀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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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대 (표트르 1세의 아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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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대 (알렉세이 황태자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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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대 (표트르 3세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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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세대 (파벨 1세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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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세대 (니콜라이 1세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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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세대 (니콜라이 1세의 손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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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세대 (니콜라이 1세의 증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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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세대 (알렉산드르 2세의 손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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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세대 (블라디미르 대공의 사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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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세대 (미하일 대공의 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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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공으로 태어났으나 1886년 알렉산드르 3세가 칙령을 내려 작위 추탈.
- 2 러시아 제국은 멸망했으나 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대공의 아들로서 작위 주장
- 3 러시아 제국은 멸망했으나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의 사위 및 외손으로서 작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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