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군사고문단(駐韓美軍事顧問團, 영어: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KMAG), 공식적으로는 영어: United States Military Advisory Group to the Republic of Korea은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군사분야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하는 군사고문단이다.
현재 주한 미 합동군사업무단(駐韓美合同軍事業務團, 영어: Joint U.S. Military Affairs Group (JUSMAG-K))으로 통합되어 있다.[1]
역사
기원
1883년 10월 19일, 조선국왕고종은 군사 현대화를 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군사 훈련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미국 정부는 퇴역한 윌리엄 매킨타이어 다이 준장과 커민즈(E. H. Cummins)와 리(J. G. Lee), 닌스테드(F. J. H. Nienstead)를 고문단 조선으로 보냈다.
1888년 4월 7일, 조선에 고종은 윌리엄 다이를 시위대의 교관, 커민즈를 연무공원의 수석교관으로 임명하였다.
1894년 7월 23일,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에 의해 조선군의 현대화와 훈련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한국 전쟁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한반도를 38도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남북으로 나누어 관리하게 되었다. 1946년 미국에 의한 한국의 군정기가 시작되고, 미국 제40보병사단의 위관 18명에게 임무를 맡겨 각 시에 한개 연대를 편성하도록 하였다. 1948년 가을 남조선국방경비대가 대한민국 육군으로 재조직화되고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지킬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것을 확인한 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8월 15일 100여명의 장병으로 구성된 임시 "군사고문단"로 하여 대한민국 육군의 연대를 편성하고 그들을 훈련시켰으며 군수물자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8월 15일에서 11월 31일까지 241명으로 규모가 커졌고, 한국의 군정기의 종료와 마지막으로 제5연대전투단이 한반도를 떠나면서 1949년 7월 1일 주한 미군 사절단의 일부이자 '주한 미 군사고문단'으로서 정식으로 창설을 마쳤다.[2][3]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극동사령부에 편입되었다가, 제8군으로 지휘통제권을 되돌려 지면서, 제8군 예하 '육군 제8668부대, 주한 미 군사고문단', 1950년 12월 28일에 육군 제8202부대로 바뀌었다.[3]
전후
해군과 공군의 군사고문단은 1950년 7월 27일과 1952년 2월 7일에 창설되었다. 이들은 1953년 협정체결로 임시 주한 군사고문단, 그 해 9월에 임시 주한 미 합동군사원조고문단으로 통합되었다. 1956년~1963년까지 인원이 2,878명으로 늘었다.
1971년 4월 1일, 임시를 떼고 '미 합동군사업무단' 혹은 '주한 미 합동고문단'으로 정식 조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