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이 노동당을 기반으로 정의당을 설립했다. 1956년 쿠데타로 후안 페론이 망명한 뒤부터 한동안 정의당의 이름으로 정치활동이 활동하는 것이 금지됐다. 70년대부터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됐고, 1973년 후안 페론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해 집권당이 되었다. 후안 페론 사망이후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정의당의 당수가 됐다. 재정위기와 정치 폭력은 이사벨 페론 정부에 위기를 가져왔고, 1976년 쿠데타의 원인이 됐다. 이사벨 페론은 1985년까지 당수직을 역임하다가 사퇴했다. 군사 독재정권 종식 이후 치러진 1983년 대선에서 급진시민연합의 라울 알폰신 후보에 패배하였다. 1989년 대선에서 정의당의 우익 포퓰리스트인 카를로스 메넴이 당선됐다. 정의당은 메넴이 퇴임한 1999년까지 아르헨티나의 집권당이 되었다. 그러나 급진시민연합(UCR)과 FrePaSo(정의당에서 탈당한 중도좌파 세력)의 대결구도가 형성된 1999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패배했다.
↑Kyle, Jordan; Gultchin, Limor (November 2018). “Populists in Power Around the World”. 《Institute for Global Change》 (영어). 2019년 12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12월 5일에 확인함.
“Argentine President Stumps for Congressional Candidates”. 《The Wall Street Journal》. 2013년 6월 29일. 2020년 2월 13일에 확인함. Speaking to thousands of supporters in a packed soccer stadium, Mrs. Kirchner stumped for the candidates who will represent her left-wing coalition, the FPV, in October's vote.
↑아르헨티나에서도 결선투표가 실시될 수 있었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2003년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는 1983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집권당인 정의당에서 후보를 단일화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미 두번씩이나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인기가 떨어진 메넹을 비롯하여 키르츠너와 사아까지 같은 당에서 출마했다. 제1라운드 결과 메넹이 24.45%, 키르츠너가 22.24%, 시아가 12.11%를 득표하여 어느 누구도 최소 득표 기준(45%)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선거법에 의하여 결선 투표가 예정되었지만 메넹은 제2차 라운드를 포기하고 키르치너에게 대통령 직을 양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키르츠너가 70%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