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오씨
蔚山吳氏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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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울산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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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오연지(吳延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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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 | 오식(吳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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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선산, 구미, 상주, 김천, 충북 황간, 충남 한산, 충남 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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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오식(吳湜), 오흠로(吳欽老), 오달민(吳達民), 오달정(吳達貞), 오달선(吳達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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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1985년) | 2,696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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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 울산 오씨 종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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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오씨(蔚山吳氏)는 울산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오연지(吳延祉)는 해주 오씨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6세손 대호군 오효성(吳孝成)의 차남으로 고려 충렬왕 때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역사
'해주오씨 대호군파(大護軍派), 경파(京派)의 기원과 시조'
○ “오씨대통종보(吳氏大統宗譜), 부차대계통(夫差大系統) 계보(系譜) 67세 인유(仁裕)공”은 중국 송(宋)나라에서 서기 984년[(고려 성종 3년), 중국 송(宋) 태종옹희원년 갑신(太宗雍熙元年 甲申)]에 고려로 건너(東渡)와 해주(海州)에 정착하여 대한민국 해주오씨(海州吳氏) 시조가 된다.
○ 인유(仁裕)공은 송조 대학사(宋朝 大學士)로서 고려로 들어와 고려군기감감(高麗軍器監監)을 역임하셨고 988년(성종 7년)에 시중(侍中) 이총섬(李寵暹), 남궁원청(南宮元淸), 이윤관(李允寬) 등 3공과 사직(社稷, 태묘(太廟, 종묘), 국자감(國子監, 성균관) 건립을 주청(奏請)하여 990-991년에 건립되었다.
○ 이로써 해주오씨의 기원과 시조 인유(仁裕)공은 중국 오씨대통종보(吳氏大統宗譜), 부차대계통(夫差大系統)계보(系譜) 및 송나라로부터 동도한 연대인 서기 984년[(고려 성종 3년), 중국 송(宋) 태종 옹희 원년 갑신(太宗雍熙元年 甲申)]과 고려 사직, 태묘, 국자감건립 연도 등과 정확하게 맞으면서 해주 오씨 시조로써 명확하게 입증되고 있다.
[출처 : 해주오씨 대종회]
65世 振清(진청 환문長子)
66世 必萬(필만).琳(림).○聲楊(성양 진청三子)
66세 元俉(원오 聲揚長子).○인유(仁裕)-(聲揚)公의 차자(次子)로
67세 인유(仁裕)公”이 해주오씨 대호군(大護軍)파, 경파(京派)시조가 된다.
해주 오씨의 시조 오인유(吳仁裕)는 중국 송(宋) 나라의 학사로 984년(성종 3년) 고려에 귀화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고 해주(海州)에 정착하였다.
오인유의 6세손 대호군 오효성(吳孝成)의 차자(次子)인 문충공(文忠公) 오연지(吳延祉)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동남 변경을 침범하는 왜구(倭寇)를 토벌한 공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 학성은 울산의 옛 지명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해주 오씨에서 분적하여 울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오연지의 손자 오수천(吳受天)은 고려에서 정의대부(正義大夫)로 좌부대언(左副大言)을 지냈고, 증손 [오식](吳湜)](1370~1426)은 조선 태종조 제주안무사 재임시에 제주 한라산 남쪽을 대정현과 정의현으로 나누는 행정개혁을 하였으며, 연안부사, 형조참의와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경주부윤 겸 병마절도사,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426년 사후에 세종대왕께서 부의를 내렸으며, 1936년에 영의증에 추증되었다.
5세손인 오흠로(吳欽老 1394~1453)는 세종 조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제용판관(濟用判官) 및 황주판관(黃州判官)을 지냈다. 오도남(吳道男)은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호종(扈從)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오적남(吳迪男)은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오탁(吳琢)은 은률현감을 지냈고 경사(經史)에 깊은 조예가 있었으며 덕망이 높았다. 오환은 가선대부로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오필제(吳必濟)는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오찬웅(吳贊雄)은 절충장군에 올랐고, 오병규(吳炳奎)는 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1] 일제에 항거한 독립유공자 오용수(吳龍洙)는 1990년 애국장을 수훈받았다.
본관
울산(蔚山)은 대한민국 동해안에 위치하는 울산광역시의 지명이다. 신라(新羅) 굴아화촌(屈阿火村)인데 파사왕(婆裟王)이 현(縣)을 두었고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은 하곡(河曲)으로 개명(改名)하여 임관(臨關)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太祖)는 흥려부(興麗府)로 승격시켰다. 그 외 울주(蔚州),학성(鶴城),대성(大成),흥려(興麗) 등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 울산광역시 중구에는 학성동(鶴成洞)과 학성공원이 있다. 이런 변천을 거쳐 1397년(태조 6) 진(鎭)을 두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진(鎭)을 파(罷)하고 울산(蔚山)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삼았다. 1599년(선조 32) 부(府)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 1931년 울산면이 울산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62년 읍이 울산시(蔚山市)로 승격하고 1995년 1월 1일 울산군을 통합하였다.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승격하였다.
분파
인구
- 2000년 764가구, 2,491명
- 2015년 3,015명
같이 보기
참고 자료
- 中華 吳氏大統宗譜 編纂委員會編著 (2012년 12월)
각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