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혜왕의 서자로, 어머니는 은천옹주 임씨이다. 이복형 충정왕의 명에 의하여 승려로 출가하고 원나라에서 거주하다가, 1351년(공민왕 즉위년) 음력 12월 공민왕에 의해 현재의 부산광역시에 있던[1]만덕사에 유폐되었다[2]. 이후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석기를 데려갈까봐 만덕사에서 데려왔는데[3], 1356년(공민왕 5년)에 일부에서 석기를 추대하여 왕위에 올린다는 역모가 고해져 관련 인물들이 참형을 당하고[4] 석기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3]. 당시 석기는 수정사라는 절에 숨었던 적이 있었으며, 제주도를 탈출하여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백언린이라는 이의 집에 숨어들었고, 민간의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5].
1373년(공민왕 22년) 음력 12월에는 평양윤으로 있던 전녹생이 석기를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개경으로 보내었다[6].
1375년(우왕 원년) 음력 5월 석기는 처형되었고[5], 1382년(우왕 8년) 음력 4월 석기의 아들도 살해당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