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에 온 1마리의 오바케가 들어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오바케가 일으키는 소동을 그린 만화이다. 후지코 F. 후지오의 대표작이며 "오바Q"라는 약칭이 있다.[1]
작품의 역사
잡지 연재의 시작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부에 출입하고 있던 아이[2] 가 반입한 자필의 오바케 만화인 "케바 오토코 군"을 본 편집자는 오바케 만화를 연재할 것을 제안[3] 하고 후지코 F. 후지오[4] 가 괴담이나 오바케를 좋아하는 것[5]을 듣고 주인공이 오바케인 만화를 의뢰했다.[6]
1960년대 최초의 애니메이션과 붐의 도래
이듬해인 1965년, 연재는 쇼가쿠칸의 다른 잡지에도 연재되기 시작했다. 또한 "오바Q 붐"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화되었다.
1970년대 "신 오바Q" 연재와 2번째 애니메이션화
전작의 연재가 종료된 이후에도 독자들은 "もう一度Qちゃんを見たい"(다시 Q짱[7]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쇼가쿠칸은 학습 잡지에서 새로운 캐릭터인 O 지로가 등장하는 "신 오바케의 Q 타로"[8] 연재가 1971년부터 1973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때, 애니메이션 "신 오바케의 Q 타로"도 1971년9월부터 1972년12월까지 방송되었다.
1980년대 3번째 애니메이션화
1985년부터 후지코 F. 후지오[4] 의 아동 SF 만화인 도라에몽 이후부터 후지코 애니메이션의 붐을 타고 신에이 동화에 의해 3번째로 애니메이션화되었다. 이 때, 신작 연재의 의뢰가 저자에게 왔다. 내용은 "もうオバQのようなタイプのギャグ漫画を描くのは難しい"(이제 오바Q와 같은 유형의 개그 만화를 그리는 것은 어렵다)라고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오랜 절판
본작은 인기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을 마지막으로 단행본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 이후에도 21에몽이나 에스퍼 마미와 달리 문고판이나 신장판이 출시되지 않았고 따라서 헌책의 가격은 상승했다. 이 절판 상태는 본작을 다시 수록한 "후지코 F. 후지오[4] 대전집 (제1기)"가 간행된 2009년7월까지 21년간 지속되었다.
저작권에 관한 설
본작은 후지코 후지오의 2명 외에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스튜디오 제로가 참여하고있다. 후지코 후지오가 콤비를 해체하고 이시노모리, 스튜디오 제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4 자 사이에 저작권료의 비율 등으로 논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냐는 설이 존재한다.
유족의 의향에 관한 설
후지코 F. 후지오[4] 의 유족[9] 들은 당시와 현재의 가치의 차이에서 작품이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고인[10]의 작품이 표에 나오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F가 사망한 후에 대전집 출간 이전에는 단편집이나 일부 아동을 위한 작품만 출간을 했었다. 또한 전집인 "후지코 F. 후지오 랜드"에서도 F의 사후는 Ⓐ의 작품[11] 만을 모은 "후지코 후지오 Ⓐ 랜드"로 복원이 되어 F의 작품은 복간이 보류되었다.
후지코 후지오는 콤비가 해체[12] 된 이후에도 둘의 사이는 좋았었다. 하지만 F의 유족과 Ⓐ의 유족은 실은 불화이며 권리의 몫으로 논쟁이 있었다는 가설이 있다. 안도 역시 "봉인 작품의 수수께끼 2"에서 "후지코 후지오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적 문제가 절판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지적하고 있다.
차별 묘사에 관한 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차별 묘사 관련 항의와 그에 대한 자율 규제가 원인이라는 설. 흑인 차별이 원인이라는 설과 차별 용어가 원인이라는 설. 그리고 둘다 절판의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총괄
F와 Ⓐ 사이에서 일어난 권리 문제,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감정적 문제가 절판의 원인이라는 가설이 제일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