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5월 오면직·주열(朱烈)·안경근과 함께 일제 영사관 밀정 이종홍(李鐘洪)을 처단하였다.[1]
엄순봉은 옥관빈, 옥성빈(玉成彬), 이용로의 사살 처단을 주도하였다.[3]1933년 8월 1일 정화암과 함께 105인 사건에 연루되었던, 자칭 애국자이자 친일거부인 옥관빈이 당시 상해에 와서 일본 관헌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고, 그의 사촌형인 옥성빈(玉成彬)의 집을 찾아 가는 것을 권총으로 처단하였다.[1][3]1933년 12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 공부국 형사의 지위를 악용해 온 옥성빈을 처단하였다.[3] 1935년 3월에는 조선인거류민회 부회장인 주구 이용로를 사살 처단했다.[3]
1934년 3월 초 당시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공사가 무정부주의자들을 탄압하고, 또한 장개석을 4,000만원으로 매수하여 만주를 포기하게 하고 열하에서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자,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1] 그런데 아리요시 아키라가 일본으로 이 문제를 협의하러 출발하기 전에, 3월 17일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고급음식점에서 송별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래서 백정기·이강훈·원심창 등 3명으로 하여금 부근의 중국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살해하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였다.[1]
1935년3월 25일 이규호(李圭虎)와 함께 정화암·이달(李達)·전이방(田理芳) 등과 협의하여 상해조선인거류민회 부회장인 이용로(일명 李榮魯)가 일본총영사와 내통함을 알고 집으로 찾아가 처단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