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대상의 실물 크기 정도로 그려진 대형 그림으로, 다른 것도 아닌 특정 동물 하나를 위풍당당하게 다루면서 회화 장르의 위계질서에 도전하려는 특이한 동물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3] 거대한 캔버스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파리의 숫자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사실주의에 입각한 세부묘사를 담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림이 그려질 당시는 물론 19세기에 이르러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작품으로 볼 수 있다.[4]
소개
역사
그림 속에는 서명과 함께 제작연도가 1647년으로 표기되어 있다.[2] 그림을 그린 파울뤼스 포터르는 1625년 11월생으로, 이 연도대로라면 포터르의 나이는 겨우 22세였다. 파울뤼스 포터르는 1654년 2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5]
18세기~19세기 들어서 이 그림은 더욱 높이 평가받기 시작하였는데, 1870년대 프랑스 예술가이자 비평가였던 외젠 프로망탱은 렘브란트의 《야경》,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와 더불어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세 작품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남겼다.[6]
상세
원래는 정말로 황소 한 마리만 그린 구도였으나, 기존 캔버스의 양쪽과 상단에 판자조각을 덧대어 전원 풍경을 확장시킨 모습으로 완성되었다.[7] 그림 속 무대는 실존하는 마을로 네덜란드의 델프트와 헤이그 사이에 위치한 레이스베이크이다.[8] 포터르는 평소에도 동물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화가였지만, 그러한 평소 작품 가운데서도 본 작품은 가장 크게 그려진 것으로 다른 작품들은 훨씬 작은 크기로 그렸다. 본 작품과 비교할 만한 다른 작품은 역시 실물 크기로 그려진 승마초상화를 제외하면 전무하다.[9]
황소는 이전까지의 유럽 미술에서 간과되었던 동물이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번영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에서 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다뤄진 동물이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는 염소를 상징적인 동물로 여겼다. 똑같이 실물 크기의 새를 당당하게 다룬 얀 아셀레인의 《위협받은 백조》 (1650년)처럼, 황소도 당대 네덜란드의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10] 그러나 이처럼 상징적인 동물화는 이후로도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비견될 만한 영국 조지 스터브스의 《휘슬재킷》 (1762년)도 본 그림이 그려진 지 100년이 흐른 뒤에야 그려지게 되었다.
한편 가축전문가들은 그림 속 황소의 해부학적인 묘사 몇 가지 부분에 의거하여, 서로 다른 연령대의 동물 여섯 마리를 연구하여 하나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11]
Fromentin, Eugène, Les Maîtres d'autrefois, 1876, translated as "The Masters of Past Time", Phaidon, 1981, ISBN071482142X
MacLaren, Neil, The Dutch School, 1600–1800, Volume I, 1991, National Gallery Catalogues, National Gallery, London, ISBN0947645993
Potter, Polxeni, "The Bull (detail), 1647, By Paulus Potter (1625-1654)". Emerg Infect Dis [serial on the Internet]. 2001 Jan-Feb, accessed 3 May 2015, [1] DOI: 10.3201/eid0701.AC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