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樂羊, ? ~ ?)은 중국 전국 시대 위나라(魏)의 장군이다. 위 문후(文侯)에게 등용되여 중산국(中山國)을 멸망시키는 공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영수(靈壽)에 봉해졌다. 훗날 연나라(燕)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악의(樂毅)가 바로 그의 후손이다.[1]
생애
등용
악양의 출신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위 문후의 대신인 적황(翟璜)의 천거를 받아 장군이 되었다.[2]
중산국 정벌
위나라의 장군이 된 악양은 중산국을 공격하였다. 당시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왕이 그를 죽이고는 시신을 삶아서 국을 만들어 악양에게 보냈다. 그러나 악양은 막하(幕下)에 앉아 그 국물을 모두 마셔버림으로써 자신의 굳은 결의를 드러냈다. 이 일로 인하여 악양은 후대에도 칭송을 받게 되었다.[3]
마침내 기원전 408년(위문후 17), 악양은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중산국을 정복하였다.[4] 악양이 위나라로 돌아와 공을 논하였는데, 위 문후가 그에게 그동안 악양을 비방하던 상소문이 한 상자나 쌓여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악양은 수차례 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이는 신(臣)의 공이 아니라 주군(主君)의 힘 덕분이옵니다."라 하였다.[5]
한편 처음에 악양이 아들을 삶은 국물을 마셔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위 문후는 이에 감탄하며 도사찬(覩師贊)에게 "악양이 나 때문에 자기 아들의 고기를 먹었구나."라 하였다. 그러자 도사찬이 말하기를, "그 아들의 고기까지 먹을 정도이니, 누구의 고기인들 먹지 못하겠습니까?"라 하였다. 이후 위문후는 중산국을 정복한 악양에게 상을 내리면서도 내심 그를 의심했다고 한다.[6] 그래서인지 이후 악양의 행적은 기록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 문후는 악양을 중산국의 옛 도읍인 영수(靈壽)에 봉하였다. 악양이 죽자 영수에서 장사를 지냈고, 그 후손들 또한 대대로 영수에 살게 되었다.[7] 악양이 죽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각주
- ↑ 《사기》 권80 악의열전
- ↑ 《사기》 권44 위세가
- ↑ 《전국책》 권22 위책1 〈악양위위장이공준산〉 ; 《전국책》 권33 중산책 〈악양위위장〉
- ↑ 《사기》 권15 육국연표 ; 《사기》 권44 위세가 ; 《사기》 권80 악의열전
- ↑ 《사기》 권71 저리자감무열전 ; 《전국책》 권4 진책2 〈진무왕위감무〉
- ↑ 《전국책》 권22 위책1 〈악양위위장이공준산〉 ; 《한비자》 권22 설림편上
- ↑ 《사기》 권80 악의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