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이시다 미쓰나리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명을 무시하고 도요토미 가문의 기반을 없애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립하여 거병하려하자, 오타니 요시쓰구는 3번에 걸쳐 승산이 없다며 미쓰나리를 타이르지만, 미쓰나리의 완강한 결의에 오타니 요시쓰구도 서군에 참전한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이 승리하였고, 요시쓰구는 이 전투에서 자결하였으며 전후, 그의 영지는 몰수 되었다.
현재 성터에는 성루를 포함해 성의 좌취를 알 수 있는 유구가 없지만, 쓰루가 니시 소학교(敦賀西小学校) 정문에는 쓰루가 성 안내비가 있고, 그 외에도 쓰루가 시내 라이고지(来迎寺)에 이축된 성문이 남아있다. 또, 유키 히데야스가 그의 가신을 지역에 파견한 것에 연유해 유키 정(結城町)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