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프레체 히로시마(일본어: サンフレッチェ広島 산후렛체 히로시마[*], Sanfrecce Hiroshima)는 일본히로시마현히로시마시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축구팀이다. 팀 이름은 일본어에서 숫자 3을 뜻하는 산(三, サン)과 화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프레체(frecce)의 합성어이며 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모략가였던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한 명언인 "셋 중에 조금이라도 불화가 있어서 균열이 가게 되면 곧바로 세 사람이 다 멸망한다는 것을 알아라"에서 따왔다. 마쓰다계열 축구팀이지만, 현재 에디온이 최대 주주로 있다. (에디온 46.96%, 마쓰다 16.67%)
역사
1938년에 현 마쓰다의 옛 이름을 딴 도요 공업 축구단을 창단, J리그 전신인 JSL에서 뛰기 시작했다.
1971년에 마쓰다 SC 도요로 팀명을 변경하고, JSL이 J리그로 바뀌던 1992년에 마쓰다를 비롯한 히로시마 지역 47개 기업이 출자한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팀명을 변경했는데 이 해 유공과 자매결연을 체결했고[1] 다음 해부터 해당 구단(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초청을 받아 히로시마에서 전지훈련을 했으며 세 번째 구단인 포철에서 1993년 정규리그 최다골(10골)을 기록하여 전성기를 누렸으나 1994년 전지훈련에서 손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여[2] 그 해 황선홍라데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지만 같은 해 9월 27일 가시마와의 친선경기 1차전에서 2골을 기록한[3] 장신(191CM) 공격수 차상해 영입을 포철의 자매구단[4] 가시마와 함께 시도했으나 그 당시 에이전트 제도가 없었던 데다 선수가 해외 결정을 절대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포철 구단 쪽에서 해외 팀 이적 불가 방침을 내린 것 외에도[5] 해당 구단(산프레체 히로시마)이 유공과 자매결연을 맺은 터라[6] 무산됐다.
결국 차상해는 1994년11월 26일함상헌노주섭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7]대우 유니폼을 입었으나 샤샤 때문에 설 자리를 잃어 같은 해 전기리그 종료 후 김상문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8] 유공 유니폼을 입었지만 다음 해 입단한 세르게이 때문에 설 자리를 잃게 되자 1996년 전기리그 종료 뒤 방출되어 첫 팀인 안양 LG 치타스로 복귀했는데[9]차상해가 두 번째 대우 유니폼을 입을 당시 이적 상대였던 함상헌은 1995년 전기 중반 박지호와의 맞트레이드, 노주섭은 1996년 후기리그 때 LG로 이적하여[10]차상해와 한때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J리그 참가 이후 1994년 J리그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1995, 1996, 1999년에는 천황배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초창기만 해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J1에 잔류했으나, 2002시즌 15위를 기록하며 J2리그로 추락한다.
그러나 2003년 J2리그 2위를 기록하며 1년 만에 J리그에 복귀했으나, 2007년 J리그 교체전에서 교토 상가 FC에게 패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08년 가시마 앤틀러스를 꺾고 슈퍼컵 정상에 올랐고, J2리그 1위를 기록하여 다시 J1으로 승격했다. 재승격한 첫 해 4위를 기록하였으나 3위팀 감바 오사카의 천황배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2010 출전권을 승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