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보렌은 텍사스에서 마크 L.과 내니 보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홉 자녀 가운데 일녀였으며, 미국 국회의원 라일리 보렌의 동생이었다.[2] 보렌이 두 살이 되자 가족은 오클라호마로 이사했다. 이곳의 이스트 센트럴 스테이트 대학과 오클라호마 대학에 재학, 오클라호마 대에서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사 자격증을 입수한 뒤 오클라호마 각지에서 영어와 저널리즘을 가르쳤다.[3]
보렌은 미해군 장교 존 T. 액스턴과 혼인하여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두 아들 중 호잇 액스턴은 컨트리 스타가 되고 존은 변호사가 된다. 가정은 자녀들의 십대 초반까지 오클라호마주코만치에서 살았다. 1949년 액스턴이 플로리다주잭슨빌로 입주하자 가족도 덩달아 이사했다. 보렌은 듀폰트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4] 1997년 테네시주헨더스빌 자택의 온수 욕조에서 심장마비 뒤 익사로 92세로 운명했다.[5]
보렌은 이백에 육박하는 곡들에 이름을 아로새겼으며,[6]제리 리 루이스가 녹음한 〈Skid Row〉가 〈Heartbreak Hotel〉 이전까지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이다.
보렌은 RCA 빅터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었다. 잭슨빌 공연 이후에 톰 파커 대령에게 19세 프레슬리를 소개받았다. 밥 닐의 이익을 대변하여 일하여 프레슬리를 홍보하고 RCA 빅터의 내슈빌 지부 사장 스티븐 H. 숄스에게 압력을 가해 프레슬리와 계약되게 협력했다. 1955년 보렌과 토미 덜든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Heartbreak Hotel〉을 써냈다.[6] 덜든이 "나는 외로운 거리를 걸었소(I walk a lonely street)"라고 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한 남성의 기사를 읽고 획득한 발상을 메이 액스턴에게 전달, 보렌은 그 남성의 외로운 길의 종착지가 심통의 호텔(Heartbreak Hotel)일 것이라 제안한즉, 엘비스의 첫 1위 레코드이자 가장 위대한 로큰롤 히트곡이 탄생했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