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金順德, 1921년 5월 26일~2004년 6월 30일[1])은 대한민국의 활동가이자 화가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하나로, 위안부 여성으로서 겪은 삶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1937년 위안부에 강제 동원되어 중국에서 3년간 머무르다 1940년 일본 장교의 도움으로 귀국했다. 김덕진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2]수요집회, 아시아연대회의 등에 참석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였다. 해외 여러 전시회에 참석하며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였고, 국제 학술회 등에서 자신이 겪은 피해를 증언하였다.[3]
생애
1921년 경상남도의령군대의면에서 2남 3녀의 둘째딸로 태어났다.[4][5] 아버지는 어렸을 때 사망하였다. 상투를 자르고 창씨개명을 하라는 일제의 요구를 거부한 아버지로 인해 지리산 자락의 산청군삼장면이나 합천군삼가면 등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며 살았다.[1][6][참고 1] 열두살 때부터 어머니와 네 남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정부로 일하였다.[3] 1937년, 한 남자를 만난 김순덕은 자신을 일본으로 보내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4][6][참고 2] 30여 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넘어갔다.[3][4] 그곳에서 위안부 피해를 당하였고, 이후 난징을 거쳐 1940년까지 3년간 위안부 피해를 당하였다.[8]
김덕진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지만, 똑똑하며 외모도 준수하였다.[9] 난징으로 건너간 김덕진은 계급이 높은 고위 장교들을 상대하기 위해 차를 태워 부대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50대 일본군 고위 장교인 이즈미와 친밀한 사이를 맺게 되고 아버지이자 남편, 가족처럼 의지하게 되었다.[1][3] 1940년경 이즈미의 도움과 관심 덕분에 다른 여성 4명과 함께 위안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8] 이즈미는 현금 100엔과 함께 기차 등에서 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귀향증을 만들어 주었다.[1][3] 1940년 4월경 합천군 삼가면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왔다.[1]
서울로 상경한 후에도 이즈미와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으나, 6·25 전쟁 중 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1] 서울에서 대한민국 철도청 직원이었던 남편과 만나 결혼하였다.[1] 일부 문헌에서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으며 딸은 6·25 전쟁 때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1] 육성 인터뷰에서는 아들 넷을 낳았으나 한 명이 죽었다고 말하였다.[6] 가방 공장이나 구멍 가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으며, 위안부 피해의 후유증으로 방광염, 자궁병, 정신불안 등의 지병에 시달렸다.[1][7]
1992년부터 경기도광주시에 위치한 나눔의집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7]예술 치료의 일환으로 그린 작품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못다핀 꽃》, 《끌려감》 등이 있다.[7]
2004년 6월 30일, 수요집회가 열리던 수요일날 아침 서울아산병원에서 사망하였다.[1]
사후
2013년, 당시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김순덕의 그림을 포함한 여러 위안부 자료를 국가지정자료물로 지정하였다.[10]
2020년 발생한 윤미향의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에 대해 김순덕의 큰아들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어머니와 다른 기가 센 할머니들 계셨으면 당장 쫓아가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큰 실망감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지방에 있는 할머니들을 "낡은 봉고차"에 태워 수요집회에 참석하게 하였다면서, 어머니가 "집회 갈 때 좋은 차, 관광버스 좀 타고 가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 정대협의 사람들이 위선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11]
영향과 유산
2001년 가수 루이스가 발매한 헌정 음반인 《Tribute to 위안부 할머니》의 4번 트랙 〈끌려감〉은 김순덕의 동명의 그림을 주제로 한 것이다.[12][13]
2014년 8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교황 프란치스코이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초청 받아 참여하였다. 이 자리에서 할머니들은 《못다 핀 꽃》 작품과 영문 편지 등을 준비하여 교황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14][15]
2016년 개장한 서울특별시 중구남산 소재의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 설치된 작품 중 하나인 《대지의 눈》에는 《끌려감》이 벽화로 새겨져 있었다.[16] 그러나 작가인 임옥상의 성추행 논란으로 2023년경 서울시에 의해 다른 작품인 《세상의 배꼽》과 함께 철거되었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