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의 직조에 대한 기원은 명확치 않고 이집트나 중국 기원설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 6백년전 주나라 왕실에서 견직물을 왕의 의복으로 사용하였으며,[1] 개선장군에게 금포(錦袍)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漢)나라 때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나 서양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2]
견직물은 아시아의 대부분 지방에서 가장 귀한 옷감으로 취급되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의 중요한 수출품으로 자리잡았다. 견직물은 도자기, 향신료 등과 함께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무역에서 무역량이 큰 상품 가운데 하나였다.[3]
6세기 중반에 견의 직조 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중동과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9세기에 시칠리아가 아랍에 점령당했을 때 견직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후 유럽전역으로 견의 직조술이 전파되었고 16세기에는 프랑스 남부 리용(Lyon)에서 비단산업이 번창하였다.[4][5] 견직산업은 17세기에 인도산 면직물인 캘리코(Calico)와 모슬린(Muslin)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다소 위축되었고, 18세기 후반에 산업혁명으로 수력과 증기력을 이용한 면 방적기 및 직기가 발명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의 누에농가에 페브린병 (누에 전염병)이 돌아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4] 노세마봄비시스라는 소포자충에 의해 발생하는 누에 미립자병은 파스퇴르와 제르네의 노력으로 의해 1865년에 원인이 밝혀지며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다.[6]
견은 양모·면·삼베 등 천연섬유 그리고 가죽과 함께 기본적인 옷감이었으나[7] 얻기 어렵고, 강하면서도 가볍고 아름다운 광택감 등의 특징 덕분에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따라서 섬유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견에 대한 인류의 동경이 인공적으로 견을 생산하려는 과학적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8] 2차 산업혁명기에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다양한 종류의 인조견사와 합성섬유가 발명되었다.[8] 1885년에 인조견사 ‘샤르도네견(絹)’가 발명되었고[9] 이어서 재생섬유인 레이온(1891년) 과 유리섬유(1925년)가 개발되었다.[10] 그러던중 1935년에 미국인 월리스 캐러더스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11]나일론(Nylon)을 발명한 후[12][13][14] 천연 견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며 고급 옷감 정도로 이용되고있다.
종류
사(絲, silk thread):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
견(絹, fine silk tabby): 사(絲) 가운데 최고 상등품인 잠견사를 평직으로 균질하게 직조한 고급 직물.[15]: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