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Germania Inferior, "하 게르마니아")는 서기 85년부터 4세기에 게르마니아 세쿤다(Germania Secunda)로 명칭을 바꿀 때까지 존재한 로마 속주이다. 라인강 서쪽 기슭에 위치했고 북해를 접하고 있는, 이 속주의 중심 도시는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 (오늘날 쾰른)이었다.
명각들에서 EX.GER.INF. (Exercitus Germaniae Inferioris)라고 보통 나타내지는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주둔군은 시기에 따라 여러 군단들이 있었으며, 이 중에 미네르비아 제1군단과 울피아 빅트릭스 제30군단은 거의 영구 군단이었다. 라인강과 북해 해안가를 순찰하는 임무를 맡았던 로마 해군의 클라시스 게르마니카 (게르마니아 함대)는 카스트라 베트라, 더 이후에는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에 기지를 두었다.
로마군과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의 지역 사람들 간의 첫 접촉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기간 발생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7년에 이 지역을 침입했고 그 다음 3년간 에부로네스족과 메나피족 등의 몇몇 부족들을 전멸시켜냈으며, 이들을 카이사르는 "게르만족"이라 불렀지만, 아마 켈트족이었거나 최소한 켈트계 게르만족이었을 것이다. 게르만족의 영향력 (주로 툰그리족을 통해)이 로마 시대 동안 커졌고, 이 지역에 모든 켈트인들에 대한 동화로 이끌었다.
5세기 초 노티티아 디그니타툼에 확인되었듯이,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는 4세기에 게르마니아 세쿤다 (두 번째 게르마니아)로 개칭되었다. 콘술라리스의 행정 관리를 받았고 갈리아 대관구의 일부를 구성했다. 로마의 통제력이 상실할 때까지, 5세기에 로마인들과 리푸아리아 프랑크인들이 거주했던, 철저하게 보호되는 속주였다. 주도로서 기능은 콜로니아 클라우디아 아라 아그리피넨시움에서 유지되었고, 서로마 제국 멸망 때까지 지속되었던 교회 지역을 책임진 기독교 주교구가 되기도 하였다.
↑"Obringa" in Bruzen la Martiniere, Le Grand Dictionnaire Geographique Volume 6, 1737;
Albert Forbiger, Handbuch Der Alten Geographie Volume 3, Mayer und Wigand, 1848, fn (***) p. 126f.
↑
Rüger, C. (2004) [1996]. 〈Germany〉. Alan K. Bowman; Edward Champlin; Andrew Lintott.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X, The Augustan Empire, 43 B.C. - A.D. 69》 10 2판. Cambridge University Press. 527–528쪽. ISBN0-521-264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