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결투로 유명한 곳이다. 당시에는 부젠고쿠라번의 후나시마섬이었지만, 사사키 고지로가 간류라고 명명해 간류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결투는 《니텐키》(二天記)에 1612년 4월 13일에 벌어졌다고 하지만, 그보다 반세기 먼저 집필된 《단지호킨힛키》(丹治峯均筆記)에는 무사시가 19세 때의 일로 기재되는 등, 결투시간에도 설이 많아 실제 언제 결투를 했는지는 불명확하다.
옛날에는 주변에 암초가 있어 난소(難所)로 기피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나고야(名護屋)로부터 오사카(大阪)로 돌아가는 도중 이곳에서 배가 전복되어 모리수군(毛利水軍)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때 책임을 지고 배와 운명을 함께한 선장 아카시 요지베이(明石与次兵衛)의 이름을 따서 에도 시대에는 《요지베이가세》(与次兵衛ヶ瀬)라고 불렸다.
암초는 다이쇼 시대 왕래하는 배의 증가와 대형화로 인해 폭파시켜 잔해를 묻었다. 원래 17,000m2였던 섬의 면적은 6배 넓어진 100,000m2이다. 태평양 전쟁후 섬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생겼고, 잠시나마 30호에 달했지만, 다시 감소하여 1973년에는 다시금 무인도로 되었다. 근년에는 섬에 너구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