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은 1889년까지 무인도였고 이후 북단의 두 개의 섬들은 이즈 제도에서 온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891년에 이들은 일본에 합병되었다.
1939년에 인구는 약 1100명으로 이오섬에 다섯 곳의 정착촌(히가시, 미나미, 니시, 기타, 모토야마)이 있었고 기타이오섬에 두 곳의 정착촌(이시노무라, 니시무라)이 있었다. 1940년에 도쿄부 오가사와라 지청 이오지마촌이 설치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후 일본군은 이오섬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1933년에 활주로가 설치되었고 1937년에 확대, 정비되었다. 1941년에 이오섬에 포대가 설치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지 2년 반 후인 1944년 6월 15일에 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고 이오섬과 기타이오섬의 주민 1,094명은 7월 16일에 강제로 본토로 소환되었다. 1945년 2월 19일에 미군 제4해병사단, 제5해병사단이 이오섬에 상륙하였고 전투는 3월 26일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