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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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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20일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1998년 독재자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이자, 인도네시아 역사상 마지막 간선제 형식의 대선이기도 하다. 또한 여당인 노동당이 후보 선출을 두고 혼란을 빚다 결국 선출하지 못해, 여당 후보가 없는 대선이 되었다.[1]
투표 결과, 국민계몽당의 압둘 라흐만 와히드가 373표를 얻어 313표를 얻은 민주항쟁당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꺾고 당선되었다.[2] 선거 후, 메가와티는 결과에 승복했으나,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일어났다.[3] 이후 메가와티는 와히드의 부통령이 되었다.
개요
선거 전 상황
1967년 대통령직을 이양받은 수하르토는 장기 집권 과정에서 인권 유린, 고문 등으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1998년 대선에서 연임한 직후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에 부딪히게 된다. 시위가 계속되던 중 대통령직을 사퇴했고, 이어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하비비는 국민들에게 민주화를 약속했으나, 독재자의 후계자, 또 계속되는 반민주적 행태로 수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이 와중에 여당 노동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위란토가 하비비 지지를 철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4] 대신 노동당은 악바르 탄중을 후보로 내세웠으나, 그마저 사퇴하면서[4] 여당의 대선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선거
(해당 부분은 1999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현재는 개정되었음)
대통령은 국민협의회(MPR)에서 선출되며, 투표자의 단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3]
후보
후보 선출
민주항쟁당
민주항쟁당은 1999년 6월 7일 총선에서 33.76%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으며,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노동당(골카르)
수하르토 정권 때부터 여당이었던 노동당은 국민의 지지를 잃었으며, 총선을 앞두고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음식 등을 돌려 지지를 얻으려 했으나[5] 결국 민주항쟁당에 밀려 2위로 떨어졌다. 당초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대통령의 재선 출마가 예상되었으나, 재직 중 실정으로 인해 부통령 후보인 위란토가 지지를 철회하는 일이 일어났으며,[4] 이에 악바르 탄중을 후보로 선출했다.[4]
국민계몽당
이슬람 정당인 국민계몽당은 총선에서 12.62%를 득표해 3위를 기록했다. 1999년 8월 8일 압둘 라흐만 와히드 총재가 출마를 선언했다.[6]
후보 사퇴
노동당 악바르 탄중 후보는 선거 전 사퇴했으며, 와히드 측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4]
개표
10시 20분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 의장이 개회를 선언했고, 이어 두 후보의 지명 수락을 발표한 뒤 선거가 시작되었다.[3] 후보 이름이 적힌 개표상황판에 하나하나 기록하는 방식으로 개표되었다.[3] 초반에는 메가와티가 앞섰으나 후반에서 와히드가 앞서, 결국 와히드가 최종 당선되었다.[3]
선거 결과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