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카타르 쿠데타 미수
1996년 카타르 쿠데타 미수(아랍어: محاولة انقلاب 1996 في قطر)는 1996년 2월 14일 카타르에서 일어난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폐위 시도이자 쿠데타 미수 사건이다. 카타르 정보는 이 쿠데타 미수를 "아부 알리 작전"이라고 부르고 있다.[1] 2017-2018년 발발한 카타르 외교 위기 이후 언론사인 알자지라는 1996년 당시 카타르의 쿠데타 미수 사건에 바레인,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정부를 무너뜨릴 계획을 가지고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1][2] 동기1995년 6월 27일, 당시 왕세자였던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는 아버지이자 카타르의 에미르였던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자신이 에미르에 등극하였다. 할리파 빈 하마드 국왕이 스위스 제네바로 해외 순방을 가는 동안 무혈 궁정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쿠데타 수 시간 후 카타르의 의회 격에 해당하는 카타르 자문위원회(슈라위원회로도 불림)는 슈라위원회 특별회의를 소집하고 쿠데타 직후 권력을 장악한 하마드 왕세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헌법에 따른 강제적인 왕위 이앙 절차를 마치며 권력 장악에 성공했다.[3] 쿠데타에 대응하여 할리파 빈 하마드는 자신의 아들을 "멍청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자신이 계속해서 카타르의 합법적인 군주라고 선언했다.[4] 이후 할리파 빈 하마드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로 망명생활을 했다.[5] 하마드 빈 할리파의 통치 첫 해에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요한 여러 조치를 시행했고 민주 선거로 선출한 의회를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자유화 정책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한 아버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5] 1996년 1월에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걸프 협력 회의(GCC)가 새로 왕위에 등극한 하마드 빈 할리파와 마찰을 빚는 것을 이용하여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연달아 방문하기도 하였다.[6] 전개음모퇴위한 전 에미르와 깊은 관계였던 알타니 가문의 여러 고위 인사들은 하마드 빈 할리파 국왕을 타도하기 위한 역쿠데타를 조직했다. 카타르는 1996년의 쿠데타 미수 사태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바레인 등 해외 각국의 지지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1] 1997년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일부 익명을 요구한 서방 외교관은 쿠데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지지와 묵인이 있어야 가능했다고 말한 것을 보도했다.[7] 2018년에는 2017년부터 시작된 카타르 외교 위기 이후 알자지라가 다큐멘터리 보도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바레인이 하마드 빈 할리파 국왕을 축출하는 쿠데타에 가담했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의 보도에 따르면 쿠데타 음모의 핵심은 무장 괴한이 하마드 빈 할리파를 납치해 알라이얀 도로에 있는 자택에 연금시키는 일이었다. 납치 작전은 2월 16일 오전 5시로 예정되었으나 발각 가능성 때문에 급하게 작전일을 2월 14일로 앞당겼다.[1] 카타르 정보부에 따르면 이런 작전변경은 당시 아랍에미리트군 총사령관이었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 정보부는 카타르의 군사 시설을 완전히 장악한 쿠데타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비정규군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쿠데타 음모가 발각되어 실행 전에 실패로 돌아갔다.[1] 카타르 정부는 2월 20일 쿠데타 관련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8] 알자지라에서는 전 프랑스 육군 사령관인 폴 바릴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카타르 쿠데타 작전 시행을 요청받아 무기를 받고 계약했다고 보도했다. 아랍에미티르의 외무부 장관인 안와르 가르가시는 알자지라의 보도에 대해 폴 바릴은 아부다비를 방문했던 전 국왕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의 보안요원으로 다큐멘터리의 모든 내용은 쿠데타를 사주한 것이 아랍에미리트라는 선동적인 내용이라고 비난했다.[9] 재판쿠데타의 주동자로 에미르의 사촌이자 전 경제부 장관인 하마드 빈 자심 빈 하마드 알타니가 지목되었다. 수 년간의 망명 생활 끝에 하마드 빈 자심은 1999년 7월 납치되어 재판에 넘겨졌다.[5] 2000년 2월, 하마드 빈 자심을 포함한 32명의 쿠데타 가담자들은 내란음모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쿠데타에 연루된 85명이 추가로 기소되었으며, 이 중 일부는 궐석재판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참석한 피고인들은 전원 무죄를 주장했다.[10] 같이 보기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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