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1월 29일 -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명나라 남경에 보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중에서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3]
음력 11월 - 조선이 승려 각추(覺鎚)를 무로마치 막부에 보내, 왜구의 금압(禁壓)과 피로인(被虜人)의 귀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수호(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답사(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5][6]
↑하우봉 2010 155쪽.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 직후 室町幕府에 승려 覺鎚를 보내 왜구의 금압과 피로인의 쇄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막부의 3대장군 足利義滿은 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