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 림(皇甫林, 1333년 ~ 1394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아버지는 진주 목사 황보안(皇甫安)이다.
생애
고려 조에 그의 장인 평장사(平章事) 안우(安祐)를 따라서 여러 번 전쟁에 나가, 처음에 별장이 되었다가 여러 번 천직하여 공부 시랑(工部侍郞)에 이르렀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군무(軍務)에 밝으므로 종부령(宗簿令)에 임명되었으며,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 1등공신에 녹훈되었다.[1]
1374년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어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의 휘하에서 제주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평정하였다.
우왕이 즉위하자 전법 판서(典法判書)를 역임하고, 1380년(우왕 6)에는 예의판서(禮儀判書)로서 전라도병마사(全羅道兵馬使)에 임명되었다.[2]
1382년 밀직부사로서 영해군(寧海郡)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다.
1383년 8월 왜구가 거녕현(居寧縣)·장수현(長水縣) 등지를 함락한 뒤 군사를 나누어 전주(全州)를 침략하려고 하자, 전주부원수(全州副元帥)였던 황보림(皇甫琳)은 여현(礪峴)에서 왜구와 싸워서 물리쳤다.[3]
1385년 1월 황보림은 안동원수(安東元帥)로서 왜구 2급(級)의 목을 베었다.[4]
1388년 4월 요동정벌(遼東征伐) 때는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종군하여 위화도회군에 가담하였고, 1390년(공양왕 2) 4월 평양윤(平壤尹)으로서 회군1등공신에 녹훈되었다.[5]
1388년(창왕 1) 7월에는 왜적들이 광주(光州)를 함락시키니 양광경상전라도도체찰사(楊廣慶尙全羅道都體察使)가 되어 남원에서 왜구를 무찔렀다.[6]
1389년 6월 밀직사(密直使)로서 명나라에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러 다녀왔다.[7]
1390년 서북면도절제사 평양윤(西北面都節制使平壞尹)에 제수되고, 1391년 전라도절제사(全羅道節制使)에 임명되었다.[8]
조선이 개국된 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오른 뒤 1394년 음력 6월 21일 병으로 별세하니 향년 64세였다. 태조가 부의를 보냈다.[9]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