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개척을 위해 건설한 신사로, 당시 이 지역의 개척을 놓고 러시아 제국과 다투고 있었던 일본 제국은 러시아로부터 홋카이도와 가라후토를 점령 및 수호하기 위해 건설하였다. 보통 신궁은 유교적 관례에 따라 남향으로 짓는 반면 이 신궁은 동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 이유가 바로 러시아 제국이다.
이 신사를 구상한 사람은 탐험가인 마쓰우라 다케시로(일본어: 松浦武四郎)로, 이시카리 대사 등의 구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하코다테 하치만궁(일본어: 箱館八幡宮)의 궁사였던 기쿠치 시게카타(일본어: 菊池重賢)가 자신의 신사의 말사를 짓는 것을 추진하였고, 이것은 승인되었으나 개척사가 설치되면서 실행이 되지 않고, 대신 그는 홋카이도 신궁의 궁사로 올라오게 된다.
이후 개척사의 판관이었던 사가라 마사카쓰(일본어: 相良正勝)가 삿포로에 홋카이도소속 11국의 이치노미야를 건설하는 것을 제안하였으나 거절되었다.
1869년, 메이지 천황이 홋카이도 진호신의 제사에 관한 칙령을 발표하여, 홋카이도 개척을 위한 수호신으로 ] 오쿠니타마노미코토, 스쿠나비코 신, 오쿠니누시 신의 3신을 제정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고 이후 홋카이도 진좌신제가 행해지게 된다.
1871년에는 홋카이도 신궁의 전신인 삿포로 신사(일본어: 札幌神社)가 건립되었으며, 국폐소사의 사격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메이지 천황의 칙령으로 인한 신사였기에 칙제사의 사격 역시 보유하게 된다.
1964년에 쇼와 천황이 삿포로 신사를 홋카이도 신궁으로 승격시켰으며, 비로소 홋카이도 신궁이라는 이름을 얻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