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嵇康, 223년~262년)은 조위의 철학자이자 작가 · 시인으로, 자는 숙야(叔夜)이며 초군(譙郡) 즐현(銍縣) 사람이다. 선조는 본래 회계의 해(奚)씨였으나 원수를 피하여 초군으로 이주하였고, 집 옆에 있었던 혜산(嵇山)을 따와 성씨로 삼았다.
행적
죽림칠현 중 한 사람으로 〈양생론〉(養生論)[1], 〈여산거원절교서〉(與山巨源絶交書)[2] 등 다수의 철학·정치 논문과 두 편의 서간문을 썼다. 당시 위나라 공주(패목왕의 손녀)와 결혼했다. 혜강은 동평사람 여소(呂昭)의 아들 여손(呂巽), 여손의 동생 여안(呂安)과[3] 더불어 친했는데 여손이 친동생 여안의 아내와 간음하고 오히려 동생을 불효죄로 무고해 가두었다. 혜강은 여안을 두둔하다 종회의 건의로 사마소에 의해 40세의 나이에 여안과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