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머런-클레그 연립내각에는 보수당 인사 16명, 자민당 인사 5명이 참가하였으며, 내각 소속이지만 국무위원이 아닌 장관직에는 보수당이 8명, 자민당이 1명 참여하였다.[1] 연립내각은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의석수를 획득하면서, 단독정부인 제2차 캐머런 내각이 출범되며 끝이 났다.
2010년 4월 12일, 제54대 영국 의회가 해산되고 5월 6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2] 선거 결과 서민원 내에서 과반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는 헝 의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원내 제1당은 과반에서 20석이 부족한 보수당이었다. 보수당은 자유민주당과의 닷새 간의 연정 협상에 나섰으며, 찰스 케네디 전 대표와 존 리치 맨체스터 위팅턴 지역구 의원을 제외한 자민당 의원 55인의 압도적 찬성으로 연정 협상이 타결되었다.[3]
2010년 5월 11일,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은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내각 협약에 서명하고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4][5] 제55대 영국 의회는 5월 18일 개원하였으며, 귀족원(상원) 의원들과 서민원(하원)의 다선의원, 초선의원의 취임선서식에 이어 서민원 의장 선거도 치러졌다. 5월 25일에는 새 정부의 입법의제를 수립하는 여왕 연설이 진행되었다.[6]
자유민주당의 내각 참여 인사로는 닉 클레그부총리를 비롯해 총 5명이 있었다. 개각을 거쳐 데이비드 로스국무장관도 각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식 일원은 아니었다. 자민당 소속 장관이 사퇴하거나 물러나게 되었다면 같은 자민당 의원을 해당 관직에 임명토록 한 것이 연립내각의 원칙이었다.[7]
내각 산하 위원회의 구성 역시, 한쪽 당이 의장을 맡으면 부의장은 무조건 상대 당이 맡도록 했다. 이와 더불어 연립내각 운영을 특별 전담하는 내각 위원회도 운영되었다. 또 양당의 장관은 정부의 입장에서 연대책임을 함께 지도록 했다. 다만 연정 협약 내에서 양당 간에 견해차가 있는 사안을 세부적으로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자유민주당 내각인사들은 반대 안건에 대해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캐머런 총리가 부재중일 시 클레그 부총리가 총리 질의응답 시간에 나서기도 했다.[7]
핵심 사안에 대한 결정은 연립내각 내에서도 '쿼드' (Quad)라 불리는 핵심그룹, 즉 캐머런 총리, 클레그 부총리,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 대니 알렉산더 대장부 수석장관의 4인이 결정했다. 이들은 "정책 전반의 중대사안"을 좌우하였으며, 두 당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일도 맡았다.[8][9][10]
서민원 회의장에서 앞좌석에 앚는 정부 요인들은 당 구분 없이 다함께 착석하고 총리 질의시간에는 두 당이 하나의 의원단으로 있었던 반면,[11] 뒷쪽 좌석에 앉게 된 나머지 자유민주당과 보수당 소속 평의원들은 서로 떨어져 착석했고 원내대표도 개별적으로 두었다.[11] 또 재보궐선거에서도 두 당은 따로 후보로 나서 경쟁했다. 내각 수립 후 2012년 9월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처음으로 개각을 단행했다.[12] 그 뒤를 이어 2014년 7월 14일에는 2차 개각을 단행했다.[13]
2011년 10월 14일 리암 폭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자문가라는 이유로 군수품 조달 사업자 애덤 웨리티와 해외 고위급 회담에서 수차례 회동한 점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개인적인 흥미와 공무활동 사이의 경계를 흐려놓고 말았다"며 책임을 인정했다.[16] 후임으로 필립 해몬드 교통부장관이 취임하였으며, 해몬드 장관의 후임으로는 대장부 경제장관이, 그리닝 장관의 후임으로는 클로이 스미스 여당 보조원내총무가, 클로이 스미스의 후임으로는 그레그 핸즈가 임명되었다.[16][17]
2014년 4월 9일 마리아 밀러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 및 여성평등 부장관이 사퇴하였다. 후임으로 사지드 자비드가 문화장관 및 평등 부장관에, 니키 모건이 여성 부장관에 임명되었으며, 본래 자비드의 후임으로 대장부 재정장관직에 임명됐던 니키 모건은 여성 부장관으로서 각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