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수원군매송면(現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이다. 1942년일본으로 건너간 뒤,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서 조선인 노무자들이 일으킨 대규모 폭동을 주도한 유만수와 함께 수배되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피신하여 귀국한 뒤 1945년 5월 유만수의 주도로 경기도 안성 유씨의 집에서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망 약 3주 전인 1945년7월 24일경성부의 부민관에서 박춘금이 주도해 열린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어용 행사를 겨냥해 폭발물을 터뜨렸다. 이 사건은 일제 강점기 마지막 의열 무장항일 독립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광복 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인민청년군 사건으로 복역했고 1959년에는 이승만 암살 음모 사건에 연루되는 등 대한민국 역대 정권과의 불화로 독립유공자 서훈은 늦어졌다. 부민관 사건은 당대에는 일제의 보도통제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재조명되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