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주의 개신교 가문 출신이다. 리에주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926년에는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에주 항소법원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왈롱 운동에 가담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35년 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리에주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9년에는 벨기에 하원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에는 벨기에 정부와 레오폴 3세 국왕의 "독립"(실제로는 "중립") 정책을 강력히 반대했다. 1940년에는 벨기에군 예비역으로 동원되었지만 독일군의 포로로 잡혔고 종전 때까지 수감되었다. 벨기에의 연방제를 지지했던 레이는 1947년에 연방 국가 창설 법안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벨기에 의회의 다수는 연방제를 논의하는 것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