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가키 노부카타(일본어: 板垣 信方, 생년 미상~1548년음력 2월 14일)는 센고쿠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이다. 다케다 노부토라, 신겐 등 다케다씨 2대를 섬겼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타가키 노부야스(板垣信泰)가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있다.[1]아마리 도라야스, 하라 도라타네 등 다른 중신들과 함께 다케다 노부토라의 추방에 관여하였다. 이후 다케다 신겐 밑에서 활약했다. 야마모토 간스케를 천거한 것도 이타가키 노부카타라고 한다. 남시나노 점령 이후 스와 지역의 수호대리로 있기도 하였다. 시나노 공략에 많은 공을 세웠으나 다케다 신겐이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清)와 싸운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전사했다. 법명(法名)은 노부카타 소쿤(일본어: 信方宗薰).
생애
확실한 출생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케다 노부토라를 섬기면서 가로를 역임했다. 관직명은 스루가노카미(駿河守)이다.
1540년(덴분 9) 4월에 다케다 노부토라의 명령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시나노국사쿠군오이 사다타카(大井貞隆)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우스다성(臼田城)·이리사다성(入沢城) 등을 공격하고, 마에야마성(前山城)에 포진했다는 기록이 가장 이른 시기의 출현 기록이다. 이듬해인 1541년 6월 14일에 다케다 신겐이 다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하자, 신겐을 지지하였다. 이 때, 아마리 도라야스와 함께 료시키(両職)라는 다케다씨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고 전해지지만, 신뢰할만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1542년, 신겐이 시나노국스와군의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다카토 요리쓰구(高遠頼継)를 공격할 때에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다. 이 공적으로 신겐을 대신해서 스와군을 대리 통치하는 스와 군다이(諏訪郡代, 군지(郡司))에 임명되었다. 그 다음해인 1543년에는 정식으로 스와군우에하라성(上原城) 성주대리(城代)에 임명되어 스와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와 지배에 신겐의 결정이나 명령없이 독단적인 결정이 많았으므로, 나중에 신겐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다씨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확실하며, 이것은 1547년에 시가성(志賀城) 포위작전·간토간레이(関東管領) 우에스기씨(上杉氏)와 싸운 오다이하라(小田井原)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것으로도 잘 드러난다. 또, 스루가국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사가미국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와 동맹협상을 할 때에도 중신으로서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다케다씨 내에서의 이타가키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특히 삼국동맹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마가와씨(今川氏)나 혼간지(本願寺)와의 외교 담당으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1548년 2월 14일, 다케다 신겐과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싸움을 벌인 우에다하라(上田原) 전투에서 신겐이 패하였을 때, 전사하였다. 노부카타가 전사한 이후에는 장남이었던 이타가키 야지로 노부노리(板垣弥次郎信憲)가 이타가키씨를 상속했다.
문화적 소양
문인으로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레이제이 다메카즈(冷泉為和)가 가이국에 방문했을 때, 가카이(歌会)[주 1]를 만들고 그것을 이끄는 주장이 되기도 했다. 또, 1547년 7월에 요쓰쓰지 스에토오(四辻季遠)가 가이국과 스와군을 차례로 방문했을 때에도 우에하라성에서 그를 맞이하여 접대하고, 스와다이샤(諏訪大社)를 안내하였다. 그리고 나서 가카이를 개최하는 일이 기록에 나타난다.
가족 관계
노부카타의 가문인 이타가키씨는 이타가키 가네노부(板垣兼信)를 시조로 하며 가네노부의 아버지이자 가이 겐지(甲斐源氏) 및 다케다씨(武田氏)의 당주 다케다 노부요시(武田信義)를 그 뿌리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