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55년 12월 3일(1855-12-03 ) 사망 1934년 2월 16일(1934-02-16 ) (78세) 국적 조선 →대한제국 관련 활동 독립운동
이석영 (李石榮, 1855년 12월 3일 ~1934년 2월 16일 )은 한국 의 독립운동가 이다.
생애
1855년 에 이조판서 를 지낸 이유승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자 이석영은 자신의 농토를 팔아 망명 생활비를 마련하여 형제들하고 같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의 창설 운영자금으로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등으로 재산을 다 쓴 이후 이석영은 중국 각지를 홀로 떠돌아다녔다. 1934년 중국 상하이 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1]
가족 관계
양부: 이유원 (李裕元, 1814 ~ 1888), 13촌 백부
양모: 동래정씨(東萊鄭氏)
친부: 이유승(李裕承, 1835 ~ 1907)
친모: 동래정씨(東萊鄭氏)
처: 동래정씨(東萊鄭氏), 군수 정기철(鄭基轍)의 딸
장남 : 이규준 (李圭駿, 1896 ~ 1928), 독립운동가
자부 : 한평우(韓平愚, 1894~1982), 법무대신 한기동(韓耆東)의 딸
손녀 : 이온숙(李溫淑1912 ~ 1964)
손녀사위 : 최경섭
손녀 : 이숙온(李淑溫, 1914 ~ 1994)
손녀사위 : 김현수(金玄洙, 1914 ~ ?), 독립운동가
손녀 : 이우숙(李又淑, 1917 ~ ?)
손녀사위 : 장황권(張黃權, 1912 ~ ?), 대만 장교
처: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인진(朴麟鎭)의 딸
차남 : 이규서(李圭瑞, 1912 ~ 1933), 숙부 이회영 을 일본 경찰 에 밀고하여 체포당하게 했다.
사위: 서재형(徐載衡), 군수 서병수(徐丙壽)의 아들
기타
아들 이규준(1899 ~ 1927[ 2]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일제 의 밀정인 김달하 를 암살하기도 했다.[ 2]
다른 아들인 이규서는 숙부인 이회영을 일본 경찰 에 밀고하여 체포당하게 했다.[ 2] 이규서는 1932년 10월 이달(李達) 등과 함께 밀고자로 지목되어 오던 연충열(延忠烈) 등 2명과 함께 백정기 에게 암살당한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해공 신익희 의 여섯째 형 신재희 의 부인 경주이씨는 이석영, 이회영 , 이시영 7형제의 친 여동생이기도 했다.
김홍집 가문 역시 그의 인척으로 동생 이시영 의 첫 부인의 친정아버지였다.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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