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기념사업회

의친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2022.10.21)

의친왕기념사업회(義親王記念事業會, Royal Foundation of Korea)는 대한제국 황실 후손단체로 조선왕실대한제국의 궁중문화 무형유산과 황실 문화를 계승, 보존하고 고종황제의 둘째 황자이자 독립운동가 의친왕 이강을 중심으로 한 황실의 독립운동사를 밝히고 있다.

2022년 10월 21일, 대한황실 의친왕의 후손들과 흥선대원군, 전계대원군, 남연군 등 황실종친후손들과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여 창립총회 겸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전시 개막을 개최하였다.

의친왕

생애

의친왕 이강 (1906)

의친왕은 1877년 조선의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고종의 둘째 황자로 태어났다. 1891년 의화군에 봉해지고 궁궐의 약재와 음식을 총괄하는 사옹원 제조에, 1894년 보빙대사로 임명되어 일본에 다녀오고, 유럽 6개국 특파대사로 임명되었다. 을미사변 후 일본에 유학을 명분으로 한 볼모로 가 게이오 대학 유학 중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1898년 워싱턴D.C. 부근 세일럼에 위치한 로노크 대학(Roanoke College)과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Ohio Weslyan University)에서 유학을 하게 된다. 미국 유학 중 김규식, 안창호, 서광범, 하란사 등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였다.

1902년 고종을 폐하고 의친왕황제로 옹립시키려는 "일심회"사건이 일어났으나 실패로 돌아간 이후 아버지 고종의 경계 대상이 되어 1905년까지 국내에 귀국하지 못했다.

대한제국의 왕으로 책봉되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조선에서 자주독립국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왕에서 황제로 즉위하며 왕세자 순종은 황태자로, 왕자들은 왕으로 책봉하였다. 1900년 8월 17일, 둘째 황자 의화군 이강은 의왕으로 책봉되었다. 1906년 의왕궁인 사동궁이 건립되었고, 대한제국 육군 장군과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었다.

황족 독립운동가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는 대한황실이왕가, 고종황제를 이태왕, 순종황제를 이왕 등으로 격하하고, 의친왕은 이강 공으로 격하되었다. 1919년 의친왕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도산 안창호와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 망명을 시도하는 "대동단 사건"이 있었다. "나는 일제 치하의 황족으로 사느니, 자유대한의 평민으로 살겠다"며 "나는 임시정부와 함께 할 것임을 동포에게 고하노라"는 내용으로 독립신문에 기고한다. 워싱턴 회의 대한민족 대표 건의서에 황족대표로 참여하고 대동단 독립선언서 33인 중 첫번째로 서명하는 등 지속적인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1930년 일제에 의해 격하된 '공' 작위마저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끝까지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고 항일정신을 고수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고, 1955년 영양실조와 병환으로 안동별궁에서 훙서했다.

의친왕은 12남 9녀의 자녀를 얻었고, 1남 이건은 일본으로 귀화하며 대한황실가와 인연을 끊었고, 2남부터 5남, 7남은 후사가 끊긴 종친 가문을 잇기 위해 양자출계하여 6남 이곤의친왕의 후계자가 되어 의친왕가의 종주가 되었다.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대한제국 황실 가계도 (출처:선원계보기략)
대한제국 황실 가족사진 (경복궁 2024)

조선왕실과 대한황실의 계보는 유일하게 의친왕계로 이어진다. 순종영친왕덕혜옹주는 후사가 없어 대가 끊겼기 때문이다.

의친왕의 장남 이건은 일본으로 귀화 후 한국 황실과 연을 끊었고, 2남부터 5남, 7남은 대가 끊긴 황실 종친 가문에 양자출계하였다. 운현궁 흥선대원군, 은신군(사도세자 장조 3남), 은전군(사도세자 장조 4남), 인평대군(인조의 셋째아들, 고종의 원래 집안), 영친왕(고종의 3남) 가문의 종손은 전부 의친왕의 후손들이 계승하여 가까운 황실 종친들은 혈족으로는 전부 의친왕계이다.

의친왕의 후계는 6남 이곤이 계승하였고, 족보상 의친왕의 장손 이준이 현재 의친왕가의 종손으로 매년 8월 15일 의친왕 기신제향을 상주로서 모시고 있다.


이준 황손

의친왕가 종손 이준 황손

의친왕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이준 황손은 선원계보기략 황실족보 상 고종황제의 장증손이자 의친왕의 장손이다. 1961년 서울 덕수궁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구 황족이 덕수궁에 사는 것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에게 강제 퇴거되어 서울 청량리동 홍릉 (현 영휘원) 재실로 거처를 옮겼다. 어려서 순정효황후 윤씨, 덕혜옹주, 고종의 후궁 광화당 이씨삼축당 김씨, 운현궁 종부로부터 사동궁 황손으로 불리며 궁중예법과 황실문화를 익혔다. 의료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다국적 첨단 의료기 기업에서 근무하였고 2022년 정년과 동시에 의친왕기념사업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은퇴 후에도 전공을 살려 중입자치료기 컨설팅 및 IT스타트업 고문직을 수락하여 역임하고 있다.

1989년 덕혜옹주가 후사없이 별세하자, 이준 황손이 상주를 맡아 상을 치뤘고, 며칠 뒤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훙서하자 일본에 거주하던 숙부 이구 황세손이 도착할 때까지 임시 상주를 맡았다. 2005년 이구 황세손이 후사가 없이 별세하자, 당시 선원계보기략 상 황실 서열1위인 이준 황손은 이구 황세손의 양자로 거론되었으나 "형 의친왕家의 종손이 동생 영친왕家로 양자를 가서 이을 수는 없다"고 하여 차기 서열인 이원이 이구의 사후 양자로 출계하여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제사를 총괄하는 황사손에 봉무하고 있다.

대한제국 의친왕가의 종손 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편인데 어린 시절 미디어의 사생활 침해로 부모 이곤 황손 부부가 의도적으로 조용히 키웠다고 한다. 숙부 이석이나 고모 이해원이 주장하는 대한황실 복원론에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조부 의친왕의 잊혀진 삶과 생애가 세상에 알려지고 황실에 씌워진 식민사관 프레임 혁파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잊혀진 황실 가족의 문화를 계승하여 궁중문화의 진흥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업분야

황실의 독립운동 학술 사업

1942년과 2024년 대한황실가족사진

황실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하였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발굴하고 선양하며 그 후손들과 연계하여 연구회, 학술포럼,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의친왕과 황실의 항일운동 학술심포지엄>, <조선민족 대동단과 의친왕 학술회>, <세종시와 대한황실의 독립운동-기록과 시대의 증언 학술포럼>, <조선후기 왕실진전다례 연구발표회>등을 주최하였다.

궁중문화예술 전시/공연 사업

대한황실 후손들이소유한 조선왕실과 대한황실 궁중유물 1,000여점을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 연구하며 박물관 등과 공동연구, 유물대여, 학술회 개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제국 의친왕 기신제향 봉행

1955년 의친왕 훙서 후 부터 지내오던 사동궁 제향 전통을 근간으로 국조오례의, 대한예전, 춘관통고, 효릉등록, 속오례의, 능제규례, 태상지 등을 바탕으로 매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홍유릉 의친왕 묘역에서 의친왕과 의친왕비 김씨의 기신제향을 봉행한다.

해외 왕실 교류 사업

대한제국 황실 후손단체로서 세계 40여개국 왕실이 있는 국가들과 주로 소장 유물 전시회, 공연, 궁중복식, 황실음식, 황실복식, 진전다례 등 궁중문화 차원에서 교류를 하고 있다.

산하 위원회

사동궁 복원 추진위원회

대한제국 의왕궁 사동궁

1905년 의친왕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의왕궁이 건설되었고 사동궁이라는 별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경술국치 이후 사동궁은 일제에 의해 '이강공저'로 불렸다가 1930년 의친왕의 공위를 몰수하고 평민으로 강등시킨 후 일본에 살던 장남 이건에게 넘긴 이후 '이건공저'로 불렸다. 8.15 광복 이후 장남 이건이 일본에 귀화하자 사동궁은 다시 의친왕에게 환원되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구 황실자산 국유화법이 제정하여 황실 자산은 국유화되어 민간에 불하가 되던 중 박응래라는 인물이 노년의 의친왕에게 접근해 곧 사동궁도 국유화가 되면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빼앗기게 된다고 팔라고 강요하여 당시 시세의 1/100 가격으로 사동궁의 대부분을 사서 바로 여러 사람에게 되팔앗다. 사동궁 일부는 이곤이 물려받았으나 이마저도 한국전쟁 이후 석연치 않은 거래들로 민간에 불하가 되어 의친왕과 의친왕비는 안동별궁으로, 이곤 가족은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사동궁 건물들은 대한의사협회 회관, 서울시 의사회, 한국기원 본부, 종로예식장, SK건설 본사 및 각종 요정, 한식당, 갤러리, 미술관 등이 되었다. 2005년 서울시는 사동궁 건물 한 채를 매입하여 철거 후 '서인사 마당 공영주차장'과 '인사동 홍보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친왕기념사업회는 서울시가 철거하여 공영주차장이 되어버린 사동궁을 복원하여 황실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실과 대한황실 유물 1,000여점을 기증하여 '대한제국 사동궁 기념관'을 건립하고자 김종성 건축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동궁 복원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왕실 진전다례 보존회

종묘제례, 진연 중 다례 등 국가 다례와는 다른 조선왕실과 대한황실 대대로 황실가 안에서 계승되어온 진전다례를 유일하게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는 의친왕가 황손들을 중심으로 체계화하고 있다. 현재도 고종황제, 순종황제, 의친왕, 덕혜옹주 탄신일에 탄신다례, 별다례 등 진전다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전승을 위하여 보존회를 설립하였다.

K-ROYAL 아카데미 운영

대한황실 후손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궁중문화와 황실문화를 잘 모르는 황족들이 많아 청년 황실종친을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되었고 2023년 의친왕기념사업회 3차 정기이사회에서 황족들이 보유한 궁중문화와 황실문화 무형유산을 의친왕기념사업회의 통합 황실문화 브랜드 "K-ROYAL"로 커리큘럼을 짜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에 흩어진 황실 청년 후손들을 위한 커리큘럼으로 시작하였다가 궁중예법, 궁중복식, 궁중요리, 궁중미술, 궁중음악, 궁중무용과 황실의 독립운동사 등을 아우르는 과정을 일반인 대상으로도 개방하기 시작하였고, 2023년부터 의친왕기념사업회의 운영위원회는 20대~40대의 젊은 황손들이 전면적으로 나서게 되어 젊은 개념의 황실문화 홍보활동과 21세기 대한민국에 맞는 궁중문화 복원에 착수하였다.

같이 보기

관련 링크